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내가 믿는 것 본문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마태 5,38-39
'죄와 원죄'라는 강의시간에 '사형제도'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토론에 앞서 몇몇 실례가 소개되었고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근황이 영상으로 보여졌다.
동시에 일본 국민의 80% 이상이 '사형'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덧붙여졌다.
이후 세미나 참가자들이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예의 일본인 학생들은 역시나 사형제도 찬성쪽이다.
몇몇 가톨릭 신자 학생들은 '반대' 입장임에도
왠지 썩 내키지 않는 표정도 보인다.
수녀님을 비롯해 몇몇은 또 확실해 반대의 입장이다.
그이들의 토론에 한발 물러서 있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목숨을 두고 '찬성', '반대'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죠치대학교 신학부의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 이가 하느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사람의 목숨을 두고 '죽이자, 살리자'를 논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심지어 잔혹한 살인을 저질렀던 살인자일지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한점의 의혹도 없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일흔번씩 일곱번을 용서하라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간음한 여인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쳐죽이라고,'
자, 그렇다면 내가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물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용서?'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맞아 살인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억울하고, 분통하고, 심장이 타들어가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살인자를 향한 분노의 간극에 미칠지경일 것이다.
그리고 그 처절한 부침 속에서
이제껏 그리해 주셨듯이 분명히 그분은 말씀하실 것이다.
당신의 가르침 그대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늘 그렇듯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렇게 될 것이다.
죄 많은 내가 사랑 받았듯이,
죄 많은 그 역시 사랑할 할 수 있기를 청할 것이다.
매일 용서 받고 있는 내 모습에
그이의 약함을 이해할 수 있기를 청할 것이다.
내 손으로 찢어 죽이고 싶은 그 살인자를
그래도 나와 같은 미약한 한 사람으로
그분의 손으로 지음 받아 이 땅에 선물로 보내졌음을
그래서 당신 뜻대로 하시길 청할 것이다.
쳐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돌을 들었던 내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내 자신의 부끄러움에
돌을 두고 떠나갈 수 있기를 청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늘 그렇게 당신 뜻대로 그리 해 주실 것이다.
나는 그분이 그렇게 해 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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