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Buenos días, mi jefe!” - "좋은 아침! 나의 상사님" 본문
“¡Buenos días, mi jefe!”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갔더니 수도원 공동체에서 일하시는 한 자매님이 커피를 내려 받고 토스터기에 빵을 굽고 계셨다. 내가 커피 기계 옆에 컵을 내려 두고 토스터기 앞에서 빵을 들고 서성거리자 그분이 갑자기 어쩔줄을 몰라 한다. 그리고 굽고 있던 토스터기의 ‘멈춤’ 단추를 누르더니 색깔도 변하지 않은 빵을 빼들고 만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이른 아침 출근해서 수도원 공동체에서 이렇게 식사를 준비해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리고 그때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그분들도 자신들의 아침을 준비해서 별실로 나갔기 때문에 식사 문제(?)로 신경을 쓴 적이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허둥대는 자매님에게 ‘저는 괜찮으니 천천히 준비 하세요’라고 말을 건네지 못한 것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그 동안 자매님들이 우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얼마나 조심을 했는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신부님들만 21명이 살고 있고, 구성원 대부분이 외국에서 온 데다가 석박사 과정 중이다. 뽑혀서(?) 보내진 신부님들이라 다른 나라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말도 잘하고 똑똑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대학 내 교수 공동체이다보니 함께 살고 있는 현지인 신부님들은 모두가 대학 학장이요 교수들이다. 아무리 이쪽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 딸, 우리 모두는 한 형제요 한 자매 입니다’라고 해도,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해 보인다. 그러니 같은 공간 같은 식사를 하면서도 이쪽에서 아무리 ‘괜찮습니다. 천천히 준비하세요’라고 말을 건네도 그분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서성거림이, 우리의 기다림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더 자세히 그 자매님을 바라보니 평소의 유니폼이 아닌 출근할 때의 사복 차림이다. 짐작컨데 신부님들이 내려 오기 전에 빨리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별실로 향할 목적이었으리라. 그런데 그 마음(?)도 몰라주고, 토요일 이 아침, 늦잠이라도 자지 않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이 떠진 나는, 그렇게 아침부터 그분을 허둥대게 만들었으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마음에, 갑자기 “Mi jefe, ¡Buenos días!”, 좋은 아침! 나의 상사님’이라며 신부님 한 분이 어색함을 깨고 식당으로 들어 오신다. 이분은 올 해 70세로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마지막 한 해를 보내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나만 보면 ‘나가사키 26성인 박물관’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곧 은퇴하는 당신을 불러 달라 신다. 번역 일이라도 하게 해 달라 신다.
내가 나가사키 박물관에서 일하고, 그 박물관에는 초기 일본 선교사들인 쓴 스페인, 포르투칼 관련 자료가 많다는 말에, 그분은 나를 볼때마다 ‘나의 상사님’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서 이 아침, 옆에 서 있는 그 자매님에게도 내가 일하는 곳과 그곳이 당신이 은퇴하면 새롭게(?) 일할 곳으로 내가 그분 미래의 ‘상사’라며 친철하게 설명을 하신다. 그런데 그 자매님 역시 맞장구를 치시며, 당신도 60이 넘어 곧 은퇴인데, 당신은 다리미질과 빨래가 특기이니 당신도 함께 박물관으로 데려가 달라 신다.
이쪽은 생각도 없는데 그렇게 서로 맞장구를 치며 좋아하시는 두 분을 보면서 문득 어제의 성경 말씀이 떠올라 그 구절을 인용해 자매님에게 들려 주었다.
“자매님! 내가 필요한 것은 다라미질 하는 종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갑자기 할아버지 신부님은 온 집안을 깨우듯이 큰 웃음소리로 좋아라 하시고, 자매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시며 더 어쩔 줄을 몰라 하신다.
그렇다. 하느님 당신은 우리를 늘 그렇게 대하셨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요한 15,12-17)
자매님의 활짝 밝아진 모습에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지는 아침이다.
그리고 그분께도 고마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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