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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내일은 내일에 맡겨 두고... 본문

매일의 양식

내일은 내일에 맡겨 두고...

해피제제 2012. 1. 23. 10:13

1독서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독서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복음말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단상

전주 중앙동에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었고
그곳에서 ‘전주국제영화제’가 매해 열리고 있다.
‘전통한옥마을’에 다니러 갔다가 근처의 ‘영화의 거리’로 향했다.
뭐 딱히 눈에 뜨일 만한 것은 없는 곳이다.
그냥 잘 가꾸어 놓은 쇼핑몰이랄까!
사람도 그렇게 북적여 보이지도 않는다.
명절 전이라 가족 단위의 쇼핑객들이 가끔 눈에 띄고
젊은이의 거리답게(?) 근처 영화관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전부다.
어디에 비하면 참으로 한산한 거리다.

서울에서 10년을 넘게 살게 되면
지방의 이 정도 규모의 쇼핑몰은 눈에 차지 않는다.
종로, 명동, 강남 역삼동, 대학로 등 차고 넘쳐나는 곳을 이미 보았다면
일년에 한 두 번씩 본가 방문 때 경험하는 이런 낯섬의 체험은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온 몸으로 겪게 된다.
그래서인지 늘 북적대는 곳에서 또 그렇게 북적대며 살다가
한창 젊었을 때의 이러한 한산함은 무척이나 낯이 설었다.
다행히 수도생활을 하면서 침묵과 고요함 안에서 사는 법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한갓진 삶에서 얻어 듣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 차에 이렇게 넘쳐 나는 매장과 상품들에 발길이 뜸한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까 싶어 내가 다 걱정이 될 정도다.
명절 전이라 다 설 준비하느라 고향으로(?) 또 집안 일로 바쁠테지
나 보다 더 손익에 빠삭한 장사꾼들이 괜히 이곳에 상점을 낼리 없겠지....

하루 종일 걸었던 터라 기분도 좋고 오랜만에 시골스런 정취라 힘도 난다.
그래도 꽤 싸늘한 바람을 오래도록 맞았는지라 피곤기가 살짝 엄습한다.
그러던 차에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할머니의 다그치는 물음이 이어진다.
“외국간다매? 또 공부해야 한다매. 무슨 놈의 공부를 그렇게 평생을 한다냐?” 하신다.

‘아뿔싸!’ 아직 말씀 드리기 전이었는데,
언제쯤 ‘일본행’을 말씀드릴까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이번 본가 행에서 할머님께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가족들에게 아무 말 말라고 전했더니
앞동의 큰고모님께서 간밤에 ‘일본으로 공부하러 떠난다’는 말씀을 드린 것으로 알고
낮에 내 일본행을 확인하셨나 보다. 그렇게 된서리를 옴팡 맞으셨나싶다.

다행히도 ‘공부’라면 만사가 오케이인 할머니의 성정을 아시는 고모님이라
손자가 ‘또 공부’ 해야 한다는 말씀에 ‘무슨 놈의 공부를 그렇게 하냐’는 말로
할머님의 역정을 무사히 넘긴 듯하시다.
그런데 남은 불똥은 모두 내 차지가 되었으니 외출하고 돌아온 후로 한참이나
해명을 해야 하고 당신께서도 나를 향해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신다.

4년이라는 기간은 말씀도 못 드리고, ‘박사하러 가냐?’라는 물음에도
‘그냥 학교(교회 내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 따러 가는 거예요’ 한다.
할머님은 ‘대학교수’ 쯤으로 알고 계시리라.
내가 그렇다니 ‘공부’며 ‘학교 선생’이라면 껌뻑 죽는 할머니시니 별 말씀 안하신다.
알고도 모른 척 하시는지 ‘그냥 잘 다녀오라’고만 하신다.

간밤 꿈에서 어느 마을에서 성인식이 있었는데
행사를 무사히 마쳤는지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그 자리에서 동네사람들이 선물을 하나씩 건네는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끼는 것을 내어 주는 것이다.
개중에는 아이들이 주는 것들도 있었는데
어떤 아이는 딱지를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개구리를,
그리고 또 어떤 아이는 작은 화분을 건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선물을 받으면서 엄청 감동을 먹었던 듯
그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 꿈을 깨고 나서도
한 동안 꿈의 의미를 놓고 머물러 있어야 했다.
아마도 선물을 건네는 이들의 눈빛에서 어떤 간절한 소망을 엿보았기 때문이리라.
그 소망이 마을을 지켜달라는 혹은 큰 짐을 맡겼다는 미안함 같은 것이었는데
내용이야 모를 일이고, 대신 그 감정들이 강하게 남았는지라
마음까지 짠하게 움직인 것으로 보아 무언가 뭉클게 남아 있다.
좋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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