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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해피제제 2010. 9. 26. 17:03

캄보디아 반티엡프리업
나무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이재상 수사님과 임종진 사진작가 그리고 그분의 조카   


지난 6월 30일에 예수회에서는 5명의 형제들이 서품을 받았다.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10년간의 양성기간을 거쳐오면서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 길,
앞으로의 여정 역시 당신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해본다.
 
올 해 서품을 받은 다섯 신부님들과는 나름대로 인연이 깊다.
2001년 서강대신학대학원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던 나는
2002년 수련원에서 갓 서원을 마치고 신학대학원 철학과로 입학한
신부님들의 1년 선배였다.
동시에 대학원 원우회 총무까지 맡았던 터에
주중사도직과 학업 그리고 수도회 공동체 생활로 바쁘게 움직였던 신부님들에게
‘원우회 활동에 일절 도움이 안된다’
구박 아닌 구박을 도맡아 하는 시어머니 노릇까지 했었다.
오죽하면 그렇게 착한 내 동기, 김상용 신부님께서는
“형욱씨 우리 수사님들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라며 눈물(?)로 호소해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3년간을 찐하게 관계를 맺었던 터에
이번에 서품을 받은 신부님들과는 막역지교의 정을 나누었다.
한참이나(?)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일체 싫은 내색 없이 따라주고 도와주고 힘을 실어 준 덕분에
별 탈 없이 원우회 총무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에 ‘예수회원의 삶’을 살고자 마음먹지 않았던가!
 
동시에 재미있게 된 것은
수도회에 입회하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채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분들을 구박이라도 할라치면
“형욱 형제! 나중에 수도회 입회하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며
대학원 학번 연한은 3년에 불과하지만 당신들의 ‘수도회 입회 선배’됨은
평생 갈 것이라며 은근한 암시들을 해온다.
뭐 덕분에 지금 그분들과의 관계는 어느 선배 수사님들보다도 끈끈할 정도이다. 
 
새 사제 첫 미사에 참석해서 그분들의 나눔들을 듣다보니
참으로 각기 다른 길들을 굽이굽이 달려왔다 싶다.
우리들 마음에야 한 길 똑바로 곧게 나아가길 희망하지만
그게 어찌 우리들 마음과 같을까!
 
그렇지만 내가 보아, 굽은 길, 먼 길 돌아온 듯하지만
하느님 그분의 일에는 이렇게 굽이 돈 길들이 나의 길, 우리의 길인 듯싶다.
 
게다가 그분들의 평생의 좌우명이랄 수 있는
서품 상본 성서 구절을 살펴보면
더욱 그분들의 살아온 혹은 살아갈 다짐들을 듣게 된다.
 
박정환 신부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도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마태 11, 28) 
 
이진현 신부님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예레미아 20, 7)
 
김영훈 신부님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루카 10, 5)
 
박진혁 신부님
“여러분은 나의 친구들입니다.”(요한 15, 14)
 
유신재 신부님
“오늘 주님의 목소리를 듣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시편 95, 7-8)
 
위와 같이 새 신부님들의 다짐들을 새기다보니
창창이 남은(별일 없다면 2015년쯤이려나...--‘)
내 서품식 상본 성서 구절들에 관심이 돌려진다.
하느님이 보시면 ‘김칫국부터 마신다’며 야단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마저도 어여삐 보아주실 것이라는 뻔뻔한 마음뽀로
체하지 않을 만큼 김칫국을 들이켜 본다.
 
다양한 성품, 다양한 인생 그리고 다양한 재주를 가진 다섯 신부님들의 성소를
당신의 작품으로(Opus Dei) 더하고 늘려 풍성하게 어루만져 주셔서
제 각각 생긴 꼴대로 당신을 따르게 하는 모습이 마치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그저 지켜만 보아라’라고 말씀하시는 듯싶어
손으로 빚어 맹그신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뽐내게 하시니
당분간 내 서품상본 성서구절 후보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우리의 지식도, 우리의 업적도, 우리의 선한 봉사도
당신이 손수 가꾸시는 들에 핀 나리꽃들에 비하면
모두 소소한 노력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에
최근 기도깜으로 단박에 붙잡혀 곱씹는 중이고
씹으면 씹을수록 그 오묘한 맛이 더해지니
앞으로 또 반할만한 성서구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주, 이 달, 이 해의 내 서품상본으로 안성맞춤이다.
 
겹겹이 넉살 늘어 점점 더 왕서방 닮아가는 박정환 신부님
퍼덕퍼덕 잠 눈 가득한 ‘마시마로’ 이진현 신부님
영빨 가득하다 못해 넘치게 흘러 전하는 김영훈 신부님
눈물 좔 좔 수도꼭지 박진혁 신부님
금방이라도 감미로운 아리아 한 곡 뽑아주실 것 같은 유신재 신부님
 
이 모든 분들의 제각각 ‘들에 핀 나리꽃’ 같은 모습들 보면서
그분의 깊은 사랑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기도를 더해
사제 생활 해 나가는 동안 그 모습 그대로 뽐내며 살아가기를 기쁘게 청해본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마태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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