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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비겁하다'라는 말에 대해서... 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비겁하다'라는 말에 대해서...

해피제제 2010. 10. 13. 08:05



'비겁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더 비겁한 것은 주위 사람들을 다 자기 편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그런데 정작 사랑 받고 싶은 사람에게서는 그러지 못해.
그 사람은 이 사람의 비겁함을 알아차리거든”

이런 이야기를 당사자가 면전에서
그것도 삼자와 화자의 대화 중에 듣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화가 날까? 아니면 담담해질까?

내 경우는 순간 어리둥절함이 밀려왔다.
잠시 후, 화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가 했고,
나를 지칭해서 그렇다하니 조금은 부끄러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부끄러움도 잠시,
‘근데 내가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둘만큼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았나?’하며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화자가 나에 대해 하는 말들 중에 어떤 것은 맞기도 하겠고,
또 어떤 것은 ‘글세...’라며 머리를 갸웃거리게 하고,
또 어떤 것은 진짜로 내가 잘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대체로 옳은 지적이기 때문이다.
화자의 말처럼 ‘비겁함’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니 화낼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에구 그 말을 듣고 보니 제가 많이 부끄럽습니다.
과거에 분명히 그렇게 행동하곤 했지요.
그래서 지금 너무 부끄럽습니다.” 라며 고백한다.

그런데 이 ‘고백’을 두고 또 화자는 질타를 해 온다.
‘더 비겁한 것은 주위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조금은(아니 실은 많이) 억울한 것이
나는 전혀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없다는 데에 있다.
아니 만약 화자에게 나의 ‘부끄럽습니다’라는 고백이 위선처럼 들렸다면
이것은 전혀, 결코, never,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다.

지금껏 삶을 살아온 무의식적인 방어기재가 그랬다면
그것은 정말로 내 의도와 다른 무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
그것에 대해 나무란다면 그럴 수 있구나 하겠지만
‘무의식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더 비겁한 것은.....’이라며 말을 더하는 것은 나를 어리둥절케 할 뿐이다.

화자의 시선에 따라 내가 규정되었을 지도 모른다.
화자의 경험이 그가 가진 상처가 나로 인해 투영되기에 
마치 내가 가진 어떤 것이 그의 오랜 아픔들을 끄집어 내서
갈기갈기 생채기를 냈기에 나의 일거수 일투족에
'분노'가 솟구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자가 가진 렌즈는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몸에 깊게 새겨진 것이 그와 같은 체험같기에,
그래서 비슷하게 보이는 나의 반응들에 대해서
자신의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내가 조금은 억울할만도 하다.
계속되는 삼자에게 더하는 화자의 이야기에
어느덧 연민의 감정이 올라온다.

화나, 분노가 아닌 안쓰러움과 연민의 감정은 또 색다르다.
이야기가 계속될 수록 그저 그런 느낌이 더해진다.
더 이해하고 싶고, 더 마음을 담고 싶고,
더 진한 슬픔이 더해지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신비로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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