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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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글쓴이, 박완서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
1부 내생애의 밑줄
소리 없이 나를 스쳐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노후에 빌려 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집에 산다는 게 큰 복이다 싶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하나의 생명의 소멸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주의 소멸과 마찬가지이다.
소설이 지닌 이런 미덕, 쓰는 이와 읽는 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말하곤 한다.
대학에서 하고픈 건.... 사회적 부조리를 비판하고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지성을 길러내는 데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데가 아니었다. … 막 대학 문턱에 들어선 초년생에게 대학은 진리와 자유의 공간이었고, 만 권의 책이었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문장이었고, 지적 갈증을 축여줄 명강의였고, 사랑과 진리 등 온갖 좋은 것들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의 가장 처량한 나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
섬진강 상류 곡성의 한 마을
인간의 참다움, 인간만의 아름다움은 보통사람들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숨어 있는 것이지 잘난 사람들이 함부로 코에 걸고 이미지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다. 문학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건 진실인가. 말로 표현된 것의 자유와 한계, 읽히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조작한 이미지, 경박한 과장, 분식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바람은 그날 해 안에만 유효한 것이지 다시 또 그 고장을 찾아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관리하는 한강둔치… 두물머리 통한 운길산 수종사
이건 기억이 아니라 차라리 질병이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김구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촌스러운 편이어서 패스트푸드나 서양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우리식에다 서양식을 뒤섞은 국적 불명의 요리는 혐오까지 하는 편이다. - 깊이 공감
그 친구들 뭣 좀 잘 먹여 보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경험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굳이 영화관까지 가는 건, 여럿이 같이 보는 재미, 교감 때문이기도 한데 젊은이들이 많이 든 영화일수록 쟤들은 왜 이런 영화를 재미있어할까, 소외감만 느끼게 된다.
밴드 비지트(band visit) - 영화
다들 치매에 대해 공포감을 갖는 건 치매란 인간성 속의 좋은 부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연민, 배려, 수치심 등을 상실하고 가장 추한 밑바닥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의 평가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소설을 재미로 읽지 공부하려고 읽지는 않으니까
아마도 그의 적수는 자기 자신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나하고 맞설 적수는 나밖에 없다는 것처럼 도저한 자신감, 우월감이 또 있을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그들의 친절, 일본을 영행하고 온 사람 누구나 말하는 편안함, 대하는 사람뿐 아니라 제도상의 갖가지 친절한 배려를 하루키를 읽은 밤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건 우리 할아버지의 편견처럼 결코 아부에 능하고 속과 겉이 다른 섬나라 근성이 아니라 지독한 자부심과 도저한 우월감의 소산이 아닐까?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사에 그렇게 어정쩡하고 적당히 비겁하다.
여행지에서도 그 나라 음식으로 버틸 것과, 옷은 될 수 있는 대로 안 갈아입기가 모토이니....
거의 대부분의 책들은 삐딱한 생각을 담고 있으니 삐딱하게 서 있어야 마땅하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읽기 위주이지 소장 위주가 아니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책은 못 버린다. 책으로 젊은 피를 수혈할 수도 있다고 믿는 한 나는 늙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싫어하는 나를 누가 좋아해주겠는가
이 나이에도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비슷한 기억을 되풀이하며 어디로 가고 있을 뿐 처음은 없다는 사실 정도이다.
구형의 표면에선 아무 데나 자기가 선 자리가 중심이 된다. 만인이 중심일 수 있는 조형물은 신의 상상력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다.
2부 책들의 오솔길
기다릴 사람 없는 밥상보다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밥상이 훨씬 덜 쓸쓸하다.
엄마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이 몸이 얼마나 사랑받는 몸인데, 넘치게 사랑받은 기억은 아직도 나에겐 젖줄이다.
제주도 김영갑갤러리/ 제주 걷기 여행
상상하려면 사랑해야 한다.
잘살건만 한 치 앞이 안 보이게 불안하고 답답하고 자꾸만 초라해지는 건 무슨 까닭인가
성북동 최순우의 집-내셔널트러스트 운동
그가 발견하고 느낀 한국의 미를 내면 깊숙이 스며들게 한 뒤 비로소 글로 표현해서 읽는 사람에게 그의 것을 번지게 하는 힘이 있다.
나에 대해서도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체질이라는 걸...
책방으로 뛰어가고 싶게 만드는 책...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나는?
한꺼번에 많은 美를 본다는 건 원래 사람을 지치게 하는 법이지만...
3부 그리움을 위하여
1985년 영세를 받았다. 가톨릭에 대해 확신이 생겨서가 아니라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 그분이 계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분은 정의를 위해 박해받고 쫓기는 이들을 말없이 그분의 날개로 덮고 품으셨을뿐, 결코 선동하거나 부추기지는 않으셨다. 만약 그분까지 투쟁적이었다면 그분의 그늘, 그분의 날개 밑이 그렇게 편했을 리가 없다. 정의의 투사에게도 그분의 그늘이 필요했겠지만, 자유를 위해 피 한 방울 흘리기 싫었던 나처럼 소심한 비겁자에게도 그분의 그늘은 필요했던 것이다.
“바티칸은 지구 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이 작은 나라가 전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제로에 가깝지만,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무한대다.”
땅처럼 후한 인심은 없다고, 뿌린 것에다 백배 천배의 이자를 붙여서 갚아주는 게 땅의 마음이라고, 본전 까먹지 말고 이자로 먹고살아야 한다고...
“밥이 아까워서 못 버리느냐? 하늘이 무서워서 못 버리지”
여기는 어디까지나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이승이니까요
<나무와 여인> 조금만 더 견디렴, 곧 봄이 오리니 하는 위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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