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샘에게 보내는 편지 본문
샘에게 보내는 편지
글, 대니얼 고틀립
내 소중한 손자 샘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샘’에게
그들의 연약함이 우리의 가슴을 열어주기를
그리하여 그들은 보살핌을 받고 우리는 위로받게 되기를
네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 그리고 앞길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법을 하나하나 일러주겠다. …가만히 앉아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말이다.
“우리는 네모나게 태어나서 둥글게 죽는 것 같아요.”
네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믿는 것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완벽하지 못한 면을 지니고 있어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너 스스로 남과 다르다고 ‘생각’ 할수록 네가 더욱 외로워질 뿐이라는 걸.
피부에 난 상처는 잘 치료하면 보통 하루에 일 밀리미터씩 아문다.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몸속에 다 있다.
이타적 사랑은 순전히 타인을 위해 베푸는 사랑이다.
사랑은 아무도 모르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풀 때 가장 고귀하다.
네가 엄마 품에 선뜻 안기는 것, 그게 믿음이다.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뜨려면 물과 싸우기를 멈추고 물을 믿으면 된다.
A: “넌 모를 거야. 우린 모두 부서진다구. 우리 파도는 부서져 다 없어져버린단 말이야. 무서워”/ B: “너는 네가 파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서운 거야. 난 무섭지 않아. 우리 바다의 일부니까.”
나는 내가 세상의 일부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는 나와 함께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런 믿음을 가진 후 나는 한결 가벼워졌다.
서로 다른 지도를 가진 두 사람이 설령 서로 비슷한 삶을 산다 해도, 두 사람은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순간순간을 전혀 다르게 경험할 것이다.
샘, 네 인생지도는 어떻게 그려질까?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내면의 안정감, 즉 내 인생을 제대로 잘 살아왔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웃, 공동체, 가족과 함께 더불어 살며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모든 걸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샘, 새로운 인생지도를 찾기 위해서는 어둠 속이라도 기꺼이 찾아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 어둠 속으로 한 걸음만 들여놔보자.
첫 걸음을 어떤 식으로 내딛건, 네가 커갈수록 너 자신에게 더 많은 믿음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내가 보이는 연약함이 다른 사람들의 친절을 불러일으킬 때가 더 많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주면서 스스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우리는 강한 척, 용감한 척하지 않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준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상처받기 쉬운 여리고 약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비상 깜빡이를 켜고 “제게 문제가 생겼어요. 하지만 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라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이 훨씬 안전한 길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사실 벽에 부딪힌다고 해서 그리 나쁠 것도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뭔가 가르쳐주기 위해 벽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나 자신이 바라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부끄러워한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수치심을 치유할 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사랑받고 싶은 욕구보다 더 큽니다.”
부끄러움을 느낄 때면, 너를 사랑하고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가기 바란다.
편견은 우리가 가진 불안감에서 시작된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역사라고 해서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용기를 갖고 맞선다면 그런 역사는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에서
그렇다. 나는 우울증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 속에 살지는 않는다. 이제 내게는 고통스러운 감정에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의 ‘그림자’처럼 우리에게는 우리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리 내면에 있는 호랑이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가 외면하고 무시해온 내 안의 아우성, 바로 나 자신의 일부이다. 그러니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것.
사람들과 직접 만나 몸으로 부대끼면서 봉사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릇을 크게 만들면, 자기는 물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면, 그러니까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자기 몫의 삶을 누리지 못하면, 그건 자기 영혼을 저당잡히는 것과 같다. 부모가 자기 영혼을 저당잡히면 그 이자는 고스란히 자녀들이 갚아야 할 빚이 되고 만다.
고독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 순간부터 내가 가는 모든 길은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다. 한없이 슬프고, 한없이 두렵고, 동시에 홀가분했다.
아브라함처럼 그 길이 끝까지 안전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그러했듯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라. 네 마음속의 작은 목소리에도 항상 귀를 기울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허세는 금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내려면, 아는 척하는 것보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
“혼란스러움은 퇴비와 같다. 맞닥뜨리면 고약하지만, 퇴비 없이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기쁨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아라. 혼자 알아내는 것보다 함께 발견하는 기쁨이 훨씬 큰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을 지키는 존재를 넘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지키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한계가 없다.
남자에게 있어 성관계는 상대방과 친밀해지기 위한 행위인 반면, 여자에게는 상대방과 친밀해진 다음에 일어나는 행위라고 한다.
무언가를 갈망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허기가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이런 갈망을 지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스님의 마음 풍경은 어떠한가요?”
“어떨 때는 소란스레 흐르고 또 어떨 대는 잔잔하지요. 때로는 밝은 빛 같기도 하구요.”
마음은 늘 변한다. 격류에서 잔잔한 물로, 그리고 밝은 빛으로, 다시 격류로 변화하는 걸 스님은 줄곧 지켜봐왔지만 그건 붙잡아 앉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네 마음이 요동치는 것은 네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네가 자폐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자폐증이 곧 너는 아니다. … “할아버지는 몸에, 저는 마음에 사고를 당했어요. 하지만 우리 영혼이 다친 건 아니에요.”
생산적이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네게 고통을 잊게 해주겠다거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귀기울이지 말기 바란다. 고통은 없애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아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자신이 강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또 자기가 애초에 너무 나약했기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상처는 그렇게 치유되는 게 아니다. 상처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다. 상처는 그 자체의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아무는 것이다. … 상처는 원래 스스로 아물게 되어 있다.
몸에 난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네 몸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네가 입은 상처가 아무리 깊더라도, 그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네 안에’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보살펴주면 된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내가 어두운 터널에 있을 때, 난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터널 밖에서 어서 나오라고 외치며 출구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내 곁에 다가와 나와 함께 어둠 속에 앉아 있어줄 사람. 우리 모두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그녀는 기력이 쇠진해서 거동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나를 찾아 왔다.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게 죽어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살아온 날들에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매순간 매숨결을 새롭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험하는 게 어떤 것인지 들려주었다. … “캐롤린, 당신은 정말 잘 사셨어요.” “예, 알아요”
캐롤린은 내게 죽음과의 싸움을 멈출 때에야 비로소 삶에 눈 뜰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사랑하라, 어제보다 조금 더
우리는 무엇에 굶주려 있는 것일까? 안정감과 행복?
진정한 안정감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에만 찾아오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내 삶을 충실히 살았다고 느낄 때 얻을 수 있는 보너스와 같은 것이다.
“내일은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사랑하는 사람을 한 명 더 늘리세요. 매일 매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수를 늘려나가는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네 영혼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부나 명예가 아니라 누군가를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사랑하는 성인으로서의 책임 말이다. 샘, 사랑하거라, 어제보다 조금 더!”
너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과거로 돌아가 잃어버린 것을 떠올릴 때면 가슴은 고통으로 가득해진다. 또 내 마음이 미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갈망할 때도 역시 고통스럽다. … 우리가 가진 현재의 삶을 살 때, 지금 여기를 살 때 인생이 훨씬 행복해진다는 것을...
정말 큰 문제는 ‘살아 있지 않는 것’이다. 슬픔, 기쁨, 사랑, 괴로움, 열정, 평온. 이 모든 것들이 삶을 이루는 조각들이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네 마음이 아플 것이다. 마음속에 텅 빈 공간도 생길 케고, 하지만 내가 앞에서 말했듯, 모든 상처와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치유된다. 그게 마음이 하는 일이니까. 그래도 너는 나를 그리워하겠지만, 네가 나를 떠올릴 때마다 슬픔보다 사랑과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내가 너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람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가슴속에 차오르는 느낌 같은 것이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 봄의 정원으로 오라, 신비주의 시인, 루미
'책에게 말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홍신 인생사용 설명서 (0) | 2011.02.25 |
---|---|
아프니까 청춘이다 (0) | 2011.02.15 |
헨리 나웬의 마지막 일기 (0) | 2011.02.11 |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0) | 2011.01.21 |
마음에게 말걸기 (0) | 2011.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