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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부부같다'는 말 본문

매일의 양식

'부부같다'는 말

해피제제 2011. 11. 3. 06:21
1독서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복음말씀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단상

동기수사님과 나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꼭 부부 같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수도회에 입회하고 거의 떨어져 살아 본 적이 없다.
중간 실습기를 시작하면서 수사님은 공부 쪽으로 파견을 받았고
나는 이웃살이로 파견 받으면서 약 6개월 간 다른 공동체에서 살았고
그 후 다시금 이웃살이로 합류하게 되면서 지금껏 같이 생활한다.

같이 일어나고, 같이 미사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은 차를 타고 출근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은 따로 잔다.
공동체와 사도직장에서 별반 밖으로 나다니는 성격이 아니라 그 자리가 그 자리다.
둘이 늘 붙어 다니다 보니 서로를 너무도 많이 알게 된다.
서로의 약점과 단점을 감출 수도 없고 감출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언뜻 언뜻 서로를 닮아가는 것도 많다. 마치 부부처럼...

그렇게 함께 다니다 보니 거울 처럼 서로를 비춰 주기도 한다.
아침을 힘들어 하는 동기수사님은 기도하며 뭔가를 끄적대는 나를 보며
수도자가 그래야 할 텐데 하며 자신의 잠 많음을 한탄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일이라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무조건 뛰어 드는 동기수사님이 부럽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 놓고 자랑하는(?) 그 모습에 존경할만 하다.

가끔씩 서로 간의 부부 싸움 같은 언쟁은 나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것을 돌아 보게 하고
그래서 수시로 올라 오는 감정들에 하루하루 지루할 일이 없다.
동기수사님과 함께 하는 시간 안에서 나를 일깨우는 것들이 많으니 그 덕에 배우는 것도 많다.
벗겨도 벗겨도 계속 벗겨지는 양파처럼 서로의 모습에서 새로움들이 자꾸 얻게 되면
그리고 그 모습들이 서로를 계속 비추어 주고 호기심으로 안내하게 된다면
부부의 권태기라는 말은 무색해 지리라 본다.

서로에게 더 이상 배울 게 없고, 관심도 사그라 들고, 새로움과 호기심이 잦아 든다면
그래서 서로를 너무도 잘 안다라며 그 익숙함에 자리를 내 주게 된다면
더 이상 상대방에게서 삶의 기쁨, 나의 꿈, 그 사람의 생기를 찾아 볼 수 없게 되리라.
그리고 내 곁에는 삶의 무료함이 자리잡고 새로운, 호기로운 것들을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7년이라는 짧은 '부부생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종일 함께함에도
서로에게 나눌 것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온 종일 함께 하고 그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면서도 서로가 알아 듣는 게 다르니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의 다른 관점들을 나누다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또 서로에게 다가오는 것들에서 그이가 삶에서 붙잡고 가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다름을 이해하고 그 마음에 공감을 하게 되면서
어느덧 서로를 향해 한껏 발돋음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오늘도 여전히 '어디가, 누구 만나, 뭐 먹었어?' 라는 비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동기수사님을 보면서
"아, 쪼옴!" 비명을 지르는 내 반응에, 이 작은 생활의 기쁨들이 
서로가 끔찍하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부부같다'는 말에
그래도 정겹게 들리기도 하는 걸 보니 잔잔한 기쁨들이 알알이 묻어 난다.
머 동기수사님은 또 끔찍하다며 손사래를 칠런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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