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마음을 따르는 삶 본문
1독서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2독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말씀
"행복하여라,......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단상
동기 수사님과의 이야기다.
나: "수사님, 책 읽는 것을 왜 그렇게 좋아해?"
동기수사님: "재밌잖아"
나: "그 재미있는 거 앞으로 미래의 사도직에 살리고 싶지 않아?"
동기수사님: "그냥 책 읽는 것은 재미가 있는데
강의하고 책 쓰는 것은 골치가 아프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나: "그럼 계속 책만 읽고 살거야?
앞으로 수도회에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와야' 하는
즉 이웃살이 같은 사도직도 해야하고 원치 않지만 수사님의 달란트를 살려서
공부를 더 하게 하고 강의도 시키고 책도 쓰게 할 텐데.
그저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대로 책만 읽고서는 살아갈 수는 없잖아!"
동기수사님: "그러게...."
요즘 몸시 고민이 많아 보인다. 신학공부를 하게 되면 어떻게든지 할 터이다.
공부가 재능인 사람인지라 철학공부를 할 때도 교수님들 보다도 탁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신부님들은 수도회에서 처음으로 국내 신학 가능성을 비추자
제일 먼저 동기수사님께 특별히 국내에서 신학해 줄 것을 부탁해 오셨다.
동기수사님이 고민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신학을 끝내고 서품을 받게 되고 그 다음에는 또 사도직을 할터인데
수도회를 들어오기 전까지도 마지막까지 공부만 해온 터에
그리고 자신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는 있는데
막상 그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니 수도자로 살 수 없어 보인다는 게 고민이다.
책에 빠져 살게 되면서 돌아 본 자신의 게으름, 불성실함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실습기를 특수 연학(박사과정 진입)으로 파견받았다가
도중에 이웃살이에서 나와 함께 살게 된 경위다.
'파견'의 변경 역시 동기수사님은 '실패'의 체험으로 각인 되어 있다.
영성서적을 좋아하는 나는 그 자체로 깊이 빠져듦이 좋다.
성인들의 지혜를 쫓는 것도 즐겁고 문득문득 그이들의 앎에 다다름도 기쁘다.
내가 맛 본 깨달음을 그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확인하게 될 때는 떨림으로 남는다.
온 몸이 따뜻한 물에 잠기듯 한 참을 그렇게 평온하게 멈추어 앉아 있는다.
그 떨림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잠가두고 여운이 다 가실 때까지...
그리고 난 후 그 느낌들을 잊을새라 글로 표현하거나 서둘러 옮겨 적어둔다.
다시금 처음부터 읽어 보고 그때의 느낌과 감정 그리고 체험들을 회상한다.
글로 써진 체험들은 벗들에게 나누어진다. 내가 마주한 깨달음이고 나를 넘어선 체험이기에
벗들 역시 건질 수 있는 것은 건지고 필요 없는 것은 치워 둘 것이다.
그럼에도 내 기쁨의 체험들을 그이들이 함께 나누어 받기를 기도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기회에 하느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그이의 눈을 열어 주실 것이다.
나는 그것을 신뢰한다.
비록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사도직으로 파견 받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재밌고 기쁜 것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라도 한다.
영성서적을 읽고, 묵상하고, 체험들을 글로 적어, 벗들에게 나눈다.
나머지는 하느님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리고 신학을 나가서도 사제가 되어서 어떤 사도직에 파견 받더라도 그리 할 것이다.
나를 사로잡고 나의 넋을 빼앗는 것을 찾아내서 거기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
이것은 얼마 전 고인이 된 '스티븐 잡스'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 삶'의 다름 아니다.
세상 삶이든 수도 삶이든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다 보면
분명히 나의 생을 끌어올릴 것이다.
퇴근 길에 동기수사님이 뜬금없이 말을 건네 온다.
"나도 책을 두 권이나 썼으니 단지 재미로 책을 있는 것은 아니지,
나름대로 지식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한다.
그러면서 책을 쓰면서 출판사 편집자의 일일이 간섭이 또 스트레스 였다는 불평을 해온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자 하는 열망과 팔릴 책이어야 하는 출판사 측의 신경전이
아무래도 스트레스에 약한 수사님에게서 다시는 책을 쓰고 싶지 않도록 부작용이었나 싶다.
그러면서 난데 없이 '지식생산'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해명은
낮에 사무실에서의 대화가 지금껏 수사님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나 싶다.
여전히 고민 중에 있는 수사님을 위해 기도한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2독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말씀
"행복하여라,......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단상
동기 수사님과의 이야기다.
나: "수사님, 책 읽는 것을 왜 그렇게 좋아해?"
동기수사님: "재밌잖아"
나: "그 재미있는 거 앞으로 미래의 사도직에 살리고 싶지 않아?"
동기수사님: "그냥 책 읽는 것은 재미가 있는데
강의하고 책 쓰는 것은 골치가 아프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나: "그럼 계속 책만 읽고 살거야?
앞으로 수도회에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와야' 하는
즉 이웃살이 같은 사도직도 해야하고 원치 않지만 수사님의 달란트를 살려서
공부를 더 하게 하고 강의도 시키고 책도 쓰게 할 텐데.
그저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대로 책만 읽고서는 살아갈 수는 없잖아!"
동기수사님: "그러게...."
요즘 몸시 고민이 많아 보인다. 신학공부를 하게 되면 어떻게든지 할 터이다.
공부가 재능인 사람인지라 철학공부를 할 때도 교수님들 보다도 탁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신부님들은 수도회에서 처음으로 국내 신학 가능성을 비추자
제일 먼저 동기수사님께 특별히 국내에서 신학해 줄 것을 부탁해 오셨다.
동기수사님이 고민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신학을 끝내고 서품을 받게 되고 그 다음에는 또 사도직을 할터인데
수도회를 들어오기 전까지도 마지막까지 공부만 해온 터에
그리고 자신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는 있는데
막상 그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니 수도자로 살 수 없어 보인다는 게 고민이다.
책에 빠져 살게 되면서 돌아 본 자신의 게으름, 불성실함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실습기를 특수 연학(박사과정 진입)으로 파견받았다가
도중에 이웃살이에서 나와 함께 살게 된 경위다.
'파견'의 변경 역시 동기수사님은 '실패'의 체험으로 각인 되어 있다.
영성서적을 좋아하는 나는 그 자체로 깊이 빠져듦이 좋다.
성인들의 지혜를 쫓는 것도 즐겁고 문득문득 그이들의 앎에 다다름도 기쁘다.
내가 맛 본 깨달음을 그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확인하게 될 때는 떨림으로 남는다.
온 몸이 따뜻한 물에 잠기듯 한 참을 그렇게 평온하게 멈추어 앉아 있는다.
그 떨림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잠가두고 여운이 다 가실 때까지...
그리고 난 후 그 느낌들을 잊을새라 글로 표현하거나 서둘러 옮겨 적어둔다.
다시금 처음부터 읽어 보고 그때의 느낌과 감정 그리고 체험들을 회상한다.
글로 써진 체험들은 벗들에게 나누어진다. 내가 마주한 깨달음이고 나를 넘어선 체험이기에
벗들 역시 건질 수 있는 것은 건지고 필요 없는 것은 치워 둘 것이다.
그럼에도 내 기쁨의 체험들을 그이들이 함께 나누어 받기를 기도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기회에 하느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그이의 눈을 열어 주실 것이다.
나는 그것을 신뢰한다.
비록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사도직으로 파견 받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재밌고 기쁜 것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라도 한다.
영성서적을 읽고, 묵상하고, 체험들을 글로 적어, 벗들에게 나눈다.
나머지는 하느님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리고 신학을 나가서도 사제가 되어서 어떤 사도직에 파견 받더라도 그리 할 것이다.
나를 사로잡고 나의 넋을 빼앗는 것을 찾아내서 거기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
이것은 얼마 전 고인이 된 '스티븐 잡스'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 삶'의 다름 아니다.
세상 삶이든 수도 삶이든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다 보면
분명히 나의 생을 끌어올릴 것이다.
퇴근 길에 동기수사님이 뜬금없이 말을 건네 온다.
"나도 책을 두 권이나 썼으니 단지 재미로 책을 있는 것은 아니지,
나름대로 지식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한다.
그러면서 책을 쓰면서 출판사 편집자의 일일이 간섭이 또 스트레스 였다는 불평을 해온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자 하는 열망과 팔릴 책이어야 하는 출판사 측의 신경전이
아무래도 스트레스에 약한 수사님에게서 다시는 책을 쓰고 싶지 않도록 부작용이었나 싶다.
그러면서 난데 없이 '지식생산'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해명은
낮에 사무실에서의 대화가 지금껏 수사님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나 싶다.
여전히 고민 중에 있는 수사님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