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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세례를 받은 백성 본문

매일의 양식

세례를 받은 백성

해피제제 2011. 12. 15. 06:48
1독서

"노아의 물이 다시는  땅에 범람하지 않으리라고 내가 맹세하였듯이,
너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복음말씀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나?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단상

아넬씨가 백내장 수술을 끝내고 퇴원을 하는 날이다.
양곡성당 국제공동체 영어미사에 꼭 꼭 참석하던 이였지만
서평택 근처 가구 공장으로 직장을 이직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8시간을 넘는 왕복길을 오가며 모습을 보이곤 한다.

2008년 오른쪽 백내장 수술을 했고 며칠 전 또다시 왼쪽 눈수술을 했다.
1년 전부터 조금씩 보이지 않던 눈을 겨우겨우 붙잡고 일을 하더니
결국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서야 어렵게 이웃살이를 찾았다.
필리핀 가족들을 위해 2010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남았다.
도움 청할 곳이 마땅치 않고 또 수술을 해야하니 무보험이라 금액도 만만찮다.
이것저것 상담을 하다보니 곁에서 간병해줄 이도 없고 역시나 그노무 돈이 문제다.

해서 그이가 쉽게(?) 다닐 수 있는 가톨릭 의료기관을 찾았다.
눈수술을 전과 후 계속해서 사후 관리가 요하기에 가까운 곳이라는 게 수원의 성빈센트 병원이다.
다행히 원목사제로 계시는 분이 예수회 신부님이시고
또 사회사업팀이 이주노동자의 딱한 사정을 들어 가능한 한 편리를 보아주시겠다 한다.

그렇게 수술을 하고 나와 동기수사님은 번갈아 김포에서 수원까지 또 비슷하게 차를 타고
운전을 해서 입원 전, 입원날, 수술 후 퇴원날까지 하루를 꼬박 보내며 병원을 왕래했다.
그리고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다른 것은 엄두도 못내고 '말로만' 감사를 표한다.

다행히 간병을 해 주신 분에게는 점심 찬 때가 되어 함께 식사를 청했다.
김포에서 오갈 수 없는 상황에서 병원 측에서 간병비까지 다 지급해 준 사정이지만
그래도 말도 통하지 않는 아넬씨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것에 고마움이 더해진다. 

함께 식사를 하고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간병인 분의 사정을 또 이것저것 전해 듣게 되면서 아련함이 전해진다.
어떤 사정으로 결혼도 않고 혼자 사는 처지로 편의점일이며 물류회사 물품 분류일까지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지금의 간병일이 그나마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당신에게는
가장 수입이 좋단다.
50이 훌쩍 넘은 처지에 간병일을 하며 식사도 자기 돈으로 사 먹어야 하고
환자 병상 아래 간이 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24시간 곁을 지키면서 받아드는 게 6만원,
가끔은 환자 보호자의 호의를 입기도 하지만 야멸차게 시간을 재는 이들도 있단다.
그래도 가진 것, 배운 것이 마땅치 않아 일할 곳이 없는 처지에서
용역으로 일하면서 이것저것 떼이며 남 좋은 일만 시키던 때 보다는 지금이 훨 낫단다.
그러면서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 또 그렇게 애잔하다.

다행히 사정에 비해 나은 수입이라 하지만 몸으로 먹고 사는 처지라
두 눈과 몸에서는 피곤함은 그대로 담겨 있다.
일주일을 꼬박 간병일을 하다보면 생명의 기운 보다는 병고의 기운이 넘치는 곳이라
병이 없던 사람도 간병을 하다보면 몸 상하기 마련인데
용케도 저 밝은 기운들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내심 신앙인이겠다 싶어
"세례명이 어떻게 되세요?" 했다가 예상 외 답변을 듣게 된다.
"저 종교가 없어요" 한다. 
그러면서도 미소 속에 맑은 기운을 내뿜는 게 
당연스레 신앙인이라고 생각했던 게 괜히 미안해진다.
그러면서 또 교회와 성빈센트병원과 신앙과 하느님을 주섬주섬 이야기 한다. 


어제의 스치듯 만남이 얼마나 남달랐던지
점심시간 짧은 만남 속에서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맑은 기운으로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는 그 자매님에게서
오늘 이 아침 복음의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언뜻 세례자 요한과도 같고 또 예수님과도 같아
그분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해 본다.

하느님, 당신을 모르지만 당신께서 심어주신 선물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의 축복을 더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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