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순례를 동반해 준 두 번째 고마운 벗, 운동화 본문
순례를 동반해 준 두 번째 고마운 벗, 운동화
순례를 시작 하기 전
‘등산화’ 하나 구입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 생각을 접어 두었다.
그리고 지금 있는 신발로 어떻게 해 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빗길에는 속수무책이었지만
대신 햇빛에 금방 말랐다.
태생이 조깅화라 조금 미끄럽기도 했지만
너무도 가볍고, 나에게는 딱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조깅화여서인지,
땅의 지면을 발바닥 전체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물집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살짝 갈라지기는 했지만 반창고 하나로 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땅끝까지 함께 동행했다.
험한 산과 들, 진창길과 돌길을 걸어서인지
신발은 바닥이며 등이며 생채기 투성이다.
찢겨지고 구겨지고 색깔은 모든 먼지를 다 뒤집어쓴 누렇게 변해 버린 모습이다.
게다가 냄새는 또 얼마나 나던지…
그것도 그런 것이, 비를 맞고, 똥길을 걷고, 새벽이슬을 맞고 뜨거운 햇볕을 걷고
또 그렇게 달구어 졌으니 이리도 변화 무쌍한 까미노 여정에서
내 지저분한 모습과 똑같아져 버렸다.
내 몸에 배인 고단함과 생채기들과 냄새와 새카맣게 탄 모습이 신발과 똑 닮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함께 걸어온 덕분에
그 어떤 멋지고 튼튼한 등산화 보다도 더 애착이 가고 도저히 놓아 두고 올 수 없어
또 이렇게 깨끗하게 씻기고 말려서 비행기에 태워 이곳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
녀석은 흙투성이, 땀투성이, 냄새투성이, 생치기 투성이가 되었다.
그렇게 내 삶의 한 여정을 함께 걸어 주었다.
내 몸 곳곳 역시, 이 모든 여정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겠다 싶다.
씻고, 세탁하고, 까맣게 탄 살갗은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까미노 여정 동안에 만났던 기쁨과 힘듬, 우정과 사랑, 가슴 설렘과 두려움 등 등
그 모든 체험들이 내 몸 곳곳에 새겨졌다.
그리고 나는 그 경험을 더해 이곳에서 새롭게 까미노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준 내 신발과 ‘평범이, 보통이’, 지팡이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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