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얘가 대체 뭐가 될려고... 본문
1독서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복음말씀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단상
태국말 통역 봉사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재미난 일이 많다.
평소에는 점잖게 대화를 잘 해나가다가도(?)
무슨 수가 틀렸다치면 대뜸 "니가?", 혹은 "사비오가?" 하며 반말을 해대며
'그래 한 번 말해봐' 하는 태세로 의자를 마주 당기며 무섭게 따져온다.
처음에는 '이건 또 뭐하는 시츄에이션인가?' 하다가
나와의 대화에서 어느 부분에선가 늘 부딪치는 것들이 있어
그것을 알아 듣게 되고 그러면서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은 그이의 행동들에 동기 수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린 영혼에 기스를 많이 낸'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또 단련(?)을 받고 나니 깊이가 생기고 이해의 폭이 확장하더니
지금은 거울 같은 친구 사이다.
이웃살이 소장님이 3개월간 태국으로 안식월을 떠난 이후로
매주 화, 목, 일요일에 소장님의 공백을 메꿀겸 해서 이웃살이로 출근을 한다.
그러면서 오고가며 전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역시나 재미난 일이 많다.
그런 터에 어제는 뜬금없이 '사비오가 많이 착해졌어' 한다.
'이건 또 머하자는 시츄에이션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그이가 그렇게 말한 이유란 것이 재미가 난다.
누군가가 제주도에서 유기농 귤이라며 제 멋대로 생겨먹은 귤을 박스채 보내왔다.
반질반질하게 무엇인가를 발라 놓은(멜라닌???인가 암튼) 시중에 파는 예쁘장한 귤과는 다르게
생긴 것이 제 각각인 것이 무르고 터진 것도 있고
크고 작은 것이 정리정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런 귤이다.
그래도 생긴 것과는 달리 맛이 잘 든 것이 외모를 탓할 바가 아니다.
아무튼 이주노동자의 손에 들려온 반질반질한 귤과 투박한 그것이 책상 위에 올려 있다가
통역 봉사자에게 '이쁜 것 보다는 못 생긴 것 맛 좀 보라'며 자꾸 권하다가
급기야는 예쁜 종이가방 찾아 못생긴 것 중에 그래도 잘난 것을 꾸역꾸역 담아 손에 들려주니
흘러 가는 말로 '요즘 사비오가 착해졌어' 한다.
그러면서 동기수사님은 '형욱이가 갈 때가 되니 변했어!' 하고
이제 막 돌아와서 봉사자와 나 사이의 화해 모드가 전혀 적응이 안 되는 소장님은 '뭐가?' 하며
마치 '뭐가 착한데?'라며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부쩍 그 친구에게서
'수사님이 많이 변했어.'혹은 '착해졌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아마도 그이를 대하는 방식이나 주일날 이주노동자를 상대하는 폼에 온도차가 있었나보다.
사람들이 오면 달려나가 환대를 하고, 커피와 차를 손수 타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또 돌아갈 때면 나오지 말라는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배웅을 하니
이런 모습들에 '착해졌다'라는 소리도 듣고 있다.
전에도 사람들을 대할 때 이렇게 대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 친구에게는 또 그렇게 눈에 차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요즘 그이에게서 '착해졌다'라는 소리를 많이 듣나 보다.
아마도 까칠한 사비오 수사에게서 잰 체 하는 모습이나 그이를 가르치려는 모습들에서
혹은 어떤 권위적인 태도들에서 부대낌이 있더니 '착하지 않은 사비오'로 낙인 찍혔다가
요즘은 귤도 챙겨주고, 점심도 손수 지어 대접하고, 잘가라고 손도 흔드니까
게다가 막 다그치지도 않고 하다보니 이런저런 것들이 좋게 보이나 보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친절남'이 되고 있다.
사무실 안에서도 그이와의 해빙무드에 '싸움닭 성질 많이 죽었어' 하며
오히려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그이들은 '사비오가 착해졌어'라는 말에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다.
그이들의 눈초리를 탁할 것도 없는 것이
같이 살아봐라 본성대로 생긴대로 그냥 살아야 한다.
그이들이 내 주제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착한 척, 잰 척' 했다가는 국물도 없다.
그냥 좋으며 좋은 대로, 싫으면 싫다 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 때문에 오해도 받고 '착하지 않은 사비오'로 인식되기도 하겠지만
오래 길게 사귀다 보면 '아, 사비오가 착했구나'하고 결국은 감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그래 보인다.
그렇다고 착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착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복음말씀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단상
태국말 통역 봉사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재미난 일이 많다.
평소에는 점잖게 대화를 잘 해나가다가도(?)
무슨 수가 틀렸다치면 대뜸 "니가?", 혹은 "사비오가?" 하며 반말을 해대며
'그래 한 번 말해봐' 하는 태세로 의자를 마주 당기며 무섭게 따져온다.
처음에는 '이건 또 뭐하는 시츄에이션인가?' 하다가
나와의 대화에서 어느 부분에선가 늘 부딪치는 것들이 있어
그것을 알아 듣게 되고 그러면서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은 그이의 행동들에 동기 수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린 영혼에 기스를 많이 낸'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또 단련(?)을 받고 나니 깊이가 생기고 이해의 폭이 확장하더니
지금은 거울 같은 친구 사이다.
이웃살이 소장님이 3개월간 태국으로 안식월을 떠난 이후로
매주 화, 목, 일요일에 소장님의 공백을 메꿀겸 해서 이웃살이로 출근을 한다.
그러면서 오고가며 전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역시나 재미난 일이 많다.
그런 터에 어제는 뜬금없이 '사비오가 많이 착해졌어' 한다.
'이건 또 머하자는 시츄에이션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그이가 그렇게 말한 이유란 것이 재미가 난다.
누군가가 제주도에서 유기농 귤이라며 제 멋대로 생겨먹은 귤을 박스채 보내왔다.
반질반질하게 무엇인가를 발라 놓은(멜라닌???인가 암튼) 시중에 파는 예쁘장한 귤과는 다르게
생긴 것이 제 각각인 것이 무르고 터진 것도 있고
크고 작은 것이 정리정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런 귤이다.
그래도 생긴 것과는 달리 맛이 잘 든 것이 외모를 탓할 바가 아니다.
아무튼 이주노동자의 손에 들려온 반질반질한 귤과 투박한 그것이 책상 위에 올려 있다가
통역 봉사자에게 '이쁜 것 보다는 못 생긴 것 맛 좀 보라'며 자꾸 권하다가
급기야는 예쁜 종이가방 찾아 못생긴 것 중에 그래도 잘난 것을 꾸역꾸역 담아 손에 들려주니
흘러 가는 말로 '요즘 사비오가 착해졌어' 한다.
그러면서 동기수사님은 '형욱이가 갈 때가 되니 변했어!' 하고
이제 막 돌아와서 봉사자와 나 사이의 화해 모드가 전혀 적응이 안 되는 소장님은 '뭐가?' 하며
마치 '뭐가 착한데?'라며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부쩍 그 친구에게서
'수사님이 많이 변했어.'혹은 '착해졌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아마도 그이를 대하는 방식이나 주일날 이주노동자를 상대하는 폼에 온도차가 있었나보다.
사람들이 오면 달려나가 환대를 하고, 커피와 차를 손수 타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또 돌아갈 때면 나오지 말라는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배웅을 하니
이런 모습들에 '착해졌다'라는 소리도 듣고 있다.
전에도 사람들을 대할 때 이렇게 대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 친구에게는 또 그렇게 눈에 차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요즘 그이에게서 '착해졌다'라는 소리를 많이 듣나 보다.
아마도 까칠한 사비오 수사에게서 잰 체 하는 모습이나 그이를 가르치려는 모습들에서
혹은 어떤 권위적인 태도들에서 부대낌이 있더니 '착하지 않은 사비오'로 낙인 찍혔다가
요즘은 귤도 챙겨주고, 점심도 손수 지어 대접하고, 잘가라고 손도 흔드니까
게다가 막 다그치지도 않고 하다보니 이런저런 것들이 좋게 보이나 보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친절남'이 되고 있다.
사무실 안에서도 그이와의 해빙무드에 '싸움닭 성질 많이 죽었어' 하며
오히려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그이들은 '사비오가 착해졌어'라는 말에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다.
그이들의 눈초리를 탁할 것도 없는 것이
같이 살아봐라 본성대로 생긴대로 그냥 살아야 한다.
그이들이 내 주제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착한 척, 잰 척' 했다가는 국물도 없다.
그냥 좋으며 좋은 대로, 싫으면 싫다 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 때문에 오해도 받고 '착하지 않은 사비오'로 인식되기도 하겠지만
오래 길게 사귀다 보면 '아, 사비오가 착했구나'하고 결국은 감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그래 보인다.
그렇다고 착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착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매일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원한 반응 (4) | 2011.12.26 |
---|---|
태랑이를 위한 복음말씀 (0) | 2011.12.24 |
존경하는 사람 (3) | 2011.12.22 |
오실 주님, 오신 예수님 (0) | 2011.12.21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3) | 201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