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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내가 원한 반응 본문

매일의 양식

내가 원한 반응

해피제제 2011. 12. 26. 07:53
1독서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복음말씀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단상

"신부님, 날짜 좀 하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면담 좀 하고 싶어서요."

수도 형제들과 기분 좋게 성탄대축일 미사를 마치고
막 제의를 탈의하고 계시던 영적지도 신부님께 호기롭게 날짜를 묻는다.
제의를 정리하시던 그 모습에서 잠깐 머뭇 거림을 보이시더니
"영적지도가 필요한가요?" 되묻는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이
"근 일년 동안 찾아 오지 않더니 제가 꼭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제와서 영적지도라니...면담 할 필요가 없을 듯 싶습니다." 한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며 당황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황급히 사과를 드린다. "죄송합니다. 신부님,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거듭 사과를 드리고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사태를 수습해 보려 하지만  
더 용건이 없다는 듯이 말 없이 떠나시는 신부님의 뒷 모습에서 암담함이 깊게 찾아 든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짧은 공황 상태에 빠져 
미사가 끝나고 형제들이 마주 걸어 오는 성탄 축하 인사도 내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미안함을 가득 담아 사과를 드렸지만 서로 입장이 분명하고 더는 얘기할 것이 없다는 듯이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전했으니 그러면 족하니 쿨하게 뒤돌아서는 모습에서
'영적지도'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모습일 수도 있다.

'수사님은 수사님대로 살고, 나도 내 역할이 거기까지니 그만하면 되겠습니다.'
평소 신부님의 기조대로 당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말고 사실을 받아 들이고 이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면서
더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미안함을 간직한 사람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어떤 무례를 범한 것인지, 또 어떻게 그분을 대면해야 할지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마음 한켠에서는 충분히 미안함을 표현했고, 그 미안함의 반응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분의 입장을 전해 받았으니
앞으로 그분을 대할 때 혹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좀더 주의하고 마음을 담고 망설이지 말고 진심으로 대하도록 말을 건네온다.   

아마도 '내가 원한 반응'을 그분이 보여 주셨다면 '다행이다' 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렸을텐데
그래서 이 아침 두통약을 삼키며 찌끈거리는 머리에 눈쌀 찌푸릴 일은 없었을텐데
신부님께서 보인 냉정한 반응에 더 고민하고, 그 마음을 알아듣고 또 앞으로의 만남을 헤아리면서
내 약함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고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니
그 목소리에 따라 신부님께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를 전하고
그리고 또 그 부끄러움 안고 뚜벅뚜벅 나아가볼 일이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실수는 되풀이 하지 않겠지만
글쎄, 또 어떤 실수들을 범하며 살아가게 될지
그때에도 이 찌끈거림이 대답을 해 주겠지...

주님, 그분의 복잡한 마음들을 제 마음에 깊게 생겨 주시길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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