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용서할 수 없다면 나를 보아서 용서해 다오" 본문
“나를 보아서 용서해 다오.”
수도 공동체 원장인 비탈리 신부님이
“내일 공동체 미사 집전은 사비오 신부님이 하시겠어요?” 라고 물어 오신다.
오늘이 ‘도미니코 성인 축일’이라 세례명이 ‘도미니코’인 원장 신부님은
오늘 미사는 당신이 주례할 테니 내일 미사는 나에게 어떠냐고 물으신 것이다.
일본, 나가사키 ‘예수회 26성인 수도원’ 공동체로 이사와서 처음 주례하는미사다.
물론 매일 사제들이 미사를 공동 주례하고 있지만
아직 미사 전례 경문이 입에 붙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기에
신부님의 부탁에 아주 잠깐 흠칫 했으나 곧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내 대답과 동시에 “내일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 74년 째’가 되는 날이니
날이 날인만큼 ‘평화 기원 미사’로 봉헌 하는 것은 어때요” 하신다.
해서 나는 오늘 미사의 강론도 ‘세계 평화 기원’을 위한 내용으로 준비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 아침, 미사 강론을 준비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성당에 고요히 나 앉아 있는데
왠지 불편한 마음이 자꾸 올라 오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슨,
‘나가사키 원폭 74년 째’를 맞아 이 날을 계기로
원폭 투하로 희생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 분들을 추모하자는 일본 내 여론 때문이다.
그렇다.
어제 분명 나가사키 원폭 74년을 맞은 추모의 전야제가
이곳 나가사키 ‘평화 공원’에서 큰 규모로 열렸고
수도공동체의 형제들이 함께 참석하자고 나를 초대했는데
왠일인지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기도의 자리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분명히 ‘마음이 상한 것’이다.
마음이 상해서 그이들의 원폭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제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요 며칠 간 일본의 신문과 방송들은 자신의 나라가 행했던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진심 어린 사죄나 반성 하나 없이
오로지 ‘미국의 잔인한 원자 폭탄 투하로
아무 죄 없는 어린이들과 부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수십 만이 죽거나 다쳤고 지금도 그 고통 중에 있다’ 라는 이야기 뿐이다.
그렇게 온 국민들의 눈과 귀를
‘우리들은 원폭의 희생자’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나는 어린 아이가 토라지듯이 이렇게 마음이 상했던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발의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인류에 있을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렇게 매 해 오늘만 다가 오면
미국 대통령이 원폭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사죄했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아시아 다른 국가를 비롯해 한국에는
식민지 36년 동안 전 국토에 80발 이상의
원자폭탄을 떨어트렸으면서도
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도대체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으니
이 뻔뻔한 행위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라며 탄식한다.
나는 기도 내내 나의 하느님 그분께 이 복잡한 마음에 도움을 청한다.
원폭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해
지금도 고통 받는 부상자들을 건강을 위해
그리고 그이들의 가족들을 위해 나의 하느님 그분의 자비를 청한다.
그리고 어린 아이처럼 삐죽대는 내 미운 마음에도
여전히 용서를 청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한
불쌍한 영혼들의 그 마음들도 헤아릴 수 있도록
나의 하느님 그 분의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그 분은 기도 안에서 나에게 이리 말씀하신다.
‘사비오야, 나를 보아서 그이들을 용서해 다오’
무죄한 나의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 가셨듯이
나도 그이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용서할 수 있기를,
하루 빨리 희생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을 청할 수 있기를,
나의 하느님 그 분의 도움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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