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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아이 잘 키우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 우리 아이 교육법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아이 잘 키우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 우리 아이 교육법

해피제제 2019. 5. 10. 21:09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요. 아이 잘 키우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정말 이 질문도 상대를 잘못 찾은 듯 싶다. 난 애를 낳아 보지도, 길러 보지도 않은 독신남(?)이다. 그런 나에게 아이 키우는 방법이라니.... 아무래도 번짓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은 잘못 찾은 듯 싶다. 그래도 질문을 받았으니 부족한 답이라도 내어 놓아야 하겠지...

 

나눔을 하기 전, 두 가지 전제를 둔다면, 첫째, 세상에 어떤 답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 세상의 엄마아빠들이 각자 경험한 해답만이 존재한다는 것. 둘째, 엄마아빠는 아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것을 스스로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아이가 잘못 되길 바라며...’ 라는 심정으로 아이를 기르는 엄마아빠가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 모든 엄마아빠가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 주려는 그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아직 온전한 엄마아빠가 아니라 엄마아빠가이 되어가는 중이다. 언제까지 진행형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첫째로 타인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좋겠다. '육아법', '교육법' 등 등, 세상에 자기가 가장 뛰어난 교육서라며 소개하고 있는 책들이 차고 넘친다. 그렇게 세상의 다른 누군가의 경험적 지혜 등을 구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꼭 명심할 것은, 그 모든 것들이 다른 누군가의 경험이지 내 경험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구 엄마아빠의 우리 아이 기르는 법이라는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시행 착오 가득한 멋진 지혜들을 간직했을터, 그러니 부모들 각자가 책 한 권씩 써 보는 것도 좋겠다 (옛적에는 3대가 함께 살면서 부모님들로부터 그 지혜를 물려 받았다).

 

두번째로, 아이에게 솔직히 고백하며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엄마아빠도 아직 잘 몰라. 너를 위해 가장 좋은 것들을 찾으려고 늘 애쓰고 있지. 그렇지만 자주 실수도 하고 그래서 너를 힘들게 할 때도 있잖아. 그러니 엄마아빠랑 같이 방법들을 찾아 보지 않겠니?" 라며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에서 열까지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서로가 방법을 찾는다면 아이도 자기가 존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 올 것이며, 엄마아빠도 아이와 늘 대화를 통해 결정해 나가니 부모 자식 간에 의사 소통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게다가 늘 함께 결정한 것이니 책임 소재도 분명해서 서로 다툴 일도 없어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한 가지, '내' 아이는 결코 '내' 소유물이 아니다. 나랑 똑 같이 생긴 누군가가 거울 속에서 나랑 마주하고 있다고 여겨야 하겠다. 거울 앞에서 내가 한 손은 허리에 짚고 너 똑바로 해!’라고 다른 한 손으로 손가락질을 할 때, 그 거울 속 상대방 역시 똑 같은 모습으로 너나 똑바로 해!’ 라고 대답할테다. 아이들은 내 소유물이 아니다. 내 표현으로 하자면, 하느님께로부터 잠시잠깐 위탁 받은 그분의 선물들이다. 그래 보입니다.

 

셋째로, 역시 내 표현대로 하자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혹자는 왜 '아이 잘 키우는 방법'에서 느닷없이 '하느님 타령'인가 영문을 몰라할지 모르겠다. 살을 좀 더 붙이자면, 아이들은 내가 낳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을 산다. 경험 가득한 교육서의 가르침대로 '고기'가 아닌 '고기 잡는 법'을 전해 줄 수 있겠다. 지혜 가득한 어른의 가르침처럼 늘 아이를 배려하고 친구가 되어 대화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아 갈 것이다. 경험이, 지혜가 우리 아이의 삶에 좋은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 아이들의 삶은 엄마아빠도 그 아이 자신들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니 웬만한 믿음으로는 가당치도 않다.

 

아이의 고무줄 같은 탄력성을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는 믿음, 차라리 내가 '고기'를 잡아서 안겨 주고 싶지만 그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믿음,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실패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애가 닳고 닳지만 아이 곁에서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믿음.... 이러한 믿음들은 말 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믿고 의지하는 '신', 하느님에 대한 간절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수 있기를 우리 신앙인들은 아이를 앞에 두고 늘 청해야 할 기도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이스라엘의 지혜로운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려고 온 엄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질리듯' 온통 아플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렇다. 아이들의 엄마아빠는 평생을 이렇게 영혼이 칼에 찔리듯 아픔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 그분께 의지할 때 가능해 보인다. 그럴 수 있기를 모든 부모님들을 위해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