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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재가 된 노틀담 성당 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재가 된 노틀담 성당 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해피제제 2019. 4. 27. 20:06

재가 된 노틀담 성당 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얼마 전 수도원 공동체 휴게실에 놓인 신문을 읽다가 마음이 좀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세마나 산타 여행 상품소개 때문입니다. ‘세마나 산타 Semana Santa’ 스페인 말로 성주간을 의미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성주간’ = ‘여행상품이라는 공식이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곳 스페인에서는 성주간이 각 자치단체에 따라 공휴일로 지정되고 있기에 조금은 의미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머물고 있는 마드리드에서는 성목요일성금요일빨간날이기에 주일까지 연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전례적인 의미일 수 있지만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세마나산타’ = ‘쉬는 날일 수가 있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렸던 스페인, 20세기 중엽까지도 가톨릭이 국가 종교였던 스페인이기에 이런 조화(?)가 가능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오늘날 세상 속 크리스마스가 교회 전례의 아기 예수님 탄생일보다는 쉬는 날, 선물 주고 받는 날, 케익 먹는 날, 파티를 즐기는 날로 변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천주교 신자인 우리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풍경입니다.

 

          그렇게 성주간을 맞이했는데, ‘성주간 월요일에 프랑스로부터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바로 노틀담 대성당 화재 소식이 그것입니다. 방송을 통해서 뻘겋게 불길이 치솟는 대성당 지붕을 보면서 저 역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래서 에고, 어쩌나하면서 안타까운 탄식을 터트렸고, 힘없이 기울어지는 첨탑 붕괴의 순간에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전에도 이런 적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남대문이 불탔을 때입니다. 그때도 이만큼 속이 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또 이와 같이 소중한 문화 유산을 화마로 잃게 되었습니다.  

 

          화재의 현장에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 신체의 일부가 사라졌다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파리 시민들도 어머니를 잃은 것 같다며 슬퍼했고, 프랑스 신문에서는 파리의 심장이 불탔다며 온통 애도의 목소리입니다. ‘남대문을 방화로 잃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슬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더 가슴 아파하는 듯 보였으며, 세계 곳곳에서도 위로와 기부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의 공통된 비극 앞에서는 이렇듯 모두가 한 마음인가 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가지 제게 위로를 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화재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불타고 재가 된  성당의 광장에 모여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울려 퍼지는, 슬퍼 보이지만 위로가 가득 담긴 성모송이 그랬습니다. 정말이지 제가 오해했던. 너무 세속적이라는 프랑스 사람들의 이미지를 확 깨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실의 프랑스 교회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모든 전통과 권위로 부터의 자유, 특히 교회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면서 급속히 세속화 되었습니다. 성당이 불타고 사제들이 추방되고 심지어 살해되기까지 하면서 교회 역사 안에서 교회의 맏딸이라고까지 불려졌던 프랑스 교회는 유럽 어느 나라 보다도 급속히 세속화 되었습니다. 신자들 역시 빠르게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엎친데 덮친 겪으로 최근 아동성추행과 관련된 몇 몇 젊은 신부들이 그 부끄러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프랑스 정부는 지금까지의 아동성추행 은폐와 관리 소홀의 챔임을 물어 리옹교구의 교구장 바르바랭 추기경을 비롯해 몇 몇 교구의 주교들을 고발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프랑스 교회 전체가 모든 이들의 비난 앞에 놓일 때, 프랑스 교회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노틀담 대성당 마저 불타 버린 것입니다. 이럴 때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교회가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하느님 마저도 교회를 버렸다라고 고소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분명히 신자들과 프랑스 국민들은 교회에 실망했고 그래서 그 책임을 묻는 중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청하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염려했던 식으로는 이 화재를 빗대어 교회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 어떤 호사가들도 이 화재가 하느님이 교회에 내린 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그런 잘못과 상처 줌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으로 말없이 지켜 보던 신자들은 대성당 근처에 모여 촛불을 들어 조용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자들 뿐만이 아닙니다. 방송 인터뷰에서는, 어렸을 때 이후로 미사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 심지어 종교를 버렸다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에 신은 없다라며 무신론을 설파하던 사람들 조차도, 무너지는 첨탑 앞에서 외마티 탄성을 지르며 함께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촛불을 들고 어머니가 자장가로 들려 주었던 먼 기억 속의 성모송을 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이들이 방송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로부터 상처 받고, 그래서 현실의 종교는 떠나갔지만, 매일 같이 길을 오가며 보았던, 그래서 언제나 말 없이 배웅해 주던 노틀담 대성당이 불에 타고 나서야, 어머니 품 같은 하느님에 대한 어떤 기억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경질적으로 종교는 없다라고 비난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존재도 어렴풋이 인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화재를 지켜보면서 신자들은 물론이고 하느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 역시, 탄식과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촛불을 들고, 두 손을 모으고, 성모송을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오늘날의 세마나산타혹은 크리스마스가 여행을 떠나고 선물을 주고받고, 케익을 먹는 날일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사람들 역시 거룩한 하느님의 흔적들 앞에서는 이렇게 눈물을 짓고 탄식을 터뜨리며 각자가 가진 신앙심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자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라며 매일 같이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부활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새벽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이지만, 교회를 떠나 세상 가치들에 따라 바쁜 삶을 살면서도, 이러한 비극과 슬픔이 닥칠 때는, 하느님의 선물인 어떤 거룩함에 이끌려 제일 먼저 그분께 달려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사랑 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부탁했듯이, 바쁜 삶에 늘 어머니를 잊고 살았지만, 이렇듯 고통의 순간에는 몸에 새겨진 음률처럼 어머니 성모님을 노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밤새 눈물 짓던 막달라 마리아가, 새벽 어두움을 뚫고 예수님 무덤을 찾아 갔던 것처럼, 우리의 부활이란, 예수님 빈 무덤 곁으로, 검게 그을리고 무너진 노틀담 대성당 곁으로, 또 세상의 고통의 자리 곁에서, 그분을 기억하고, 함께 기도하며 서로에게 성모송을 노래 하면서, 서로가 위로 받고 위로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면서 우리의 부활이 이와 같을 수 있기를 청해 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