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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나는 왜 두려워하는가?'-'두려움'에 대한 단상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나는 왜 두려워하는가?'-'두려움'에 대한 단상

해피제제 2019. 6. 7. 16:52

 

'나는 왜 두려워하는가?'-'두려움'에 대한 단상

 

얼마 수도회를 통해 새로운 소임지로 파견을 명령 받았다. 2년간의 스페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게 것이다. 처음 1 간의 여정으로 스페인어를 배우러 왔다가 뜻밖의 기회로 교회사연구까지 하게 되었고,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서툰 외국어 실력으로 대학원 리첸시아 과정에 등록할 있었다. 이런 사정으로 2 간의 스페인에서의 특수 연학기는 새로운 배움과 함께 자신의 한계를 다시 분명하게 체험할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성찰 중에 가장 크게 올라 오는 한 '감정'이 있어 그것에 머물러 본다.

 

스페인에서의 생활 중에 가장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던 감정은 바로 '두려움'이었다. 이 ‘두려움’은 모든 내 불안함의 원인이었다. 어느 것 하나 이 ‘두려움’과 관계하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새로운 학문도 ‘두려움’이 가장 큰 방해물이었으며, 낯선 곳에서의 삶 역시도 ‘두려움’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도 ‘두려움’은 그들에게 말을 건네지 못하게 막았고, 이런 저런 경험들 앞에서 나를 거의 100%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두려움들이 올라 때를 되돌아보, 내가 1) 모를 , 2) 통제할 없을 , 3) 예측 불가능할 때이다.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내려고 했을 때이다. 거기에 욕심, 욕망 더해지면 두려움은 절정에 이르고 만다. 내가 통제할 없는,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무력감, 엄청난 자만심이 나를 자꾸 머뭇거리게 만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조심 조심 살게 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고, 일어날 일도 예측할 있고 그래서 그것을 모두 통제할 있다면 두려운 감정이 올라  리가 없다. 예를 들어, 슈퍼에 때는 아무런 준비 없이 슬리퍼를 끌고 혼자서도 간다. 그러나 먼 곳 스페인 바로셀로나 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시를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니 비행기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가지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 이런 두려움이 올라 , 누군가 벗과 함께라면 어디든 수가 있었다. 비록 알지도 못하고 내가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곁에서 든든한 벗이 함께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에서의 삶은 앞에 산적해 있는 것들을 당장 힘으로 어찌해 보려는 조바심에 내 벗인 하느님 그분을 헌신짝 처럼 내 버리고 말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한 이유로 수도자로 십수년을 살고 있는 나는, 지금도 여전히 힘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이렇게 두려운 천지 투성이다. 처음부터 하느님 그분을 신뢰하고 맡겼다면 그 결과가 설령 실패나 거절 받음 일지라도 뒤를 따르는 감정들은 받아들임, 평온, 온유, 잔잔함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호수 위를 걷다가 빠져버린 베드로의 처지가 이해가 간다. 예수님을 믿고 호수 위로 발을 내딛었다가 얼마쯤 위를 걷다보니 그것이 힘인양 착각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 아닌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