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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La bella túnica del alma, 육체는 우리 영혼의 아름다운 옷’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La bella túnica del alma, 육체는 우리 영혼의 아름다운 옷’

해피제제 2019. 5. 16. 22:38

“La bella túnica del alma”: ‘육체는 영혼의 아름다운 튜닉

 

아기의 옹알거림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다. ‘배고프다’, ‘똥쌌다’, ‘엄마!’ 등 등 본능적인 외침이다. 자기가 살아야 겠다..

 

아기의 이런 본능적인 외침을 두고 그것이 하거나 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한 생명이 살아 내고자 하는 분투. 그러니 그 본성을 두고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른의 본능은 달라 보인다. 어른이 되어서도 무질서한 본능은 사회의 지탄을 받고, 본능이 과할 경우에는 법의 심판까지 받는다. 최근 뉴스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본능을 다스리지 못한 사건들이 그렇다. ‘어느 권력자의 별장 동영상’, ‘클럽에서의 일탈 행동’, ‘유명 연예인의 마약 사건과 그 거짓말’, ‘정치인들의 상처를 내는 막말들’, 그리고 미성숙한 갑질 행태..., 이렇게 질서 잡히는 않은 본능에 따른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 동물의 왕국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을 정도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기와 같은 본능을 따르는 결정들에는 본인의 의지가 깃든 선택이기에 법의 처벌을 받는다. 우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식욕, 성욕, 수면욕 등)을 지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에서 예를 든 사건들처럼, 그 본능들이 무질서하게 드러날 때에 인간으로서의 지탄을 받게 된다.

 

흡사 처음에는 짐승과 같이 본능에 따른 아기들도 자라면서 선과 악을 배우게 된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몸에 새기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해서 자신의 본능을 다스리고 거기에 을 입힌 사람들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말한다. 지금 이 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라는 탄식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기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덕에 이를 때까지 끊임 없는 노력과 자기 자신과의 투쟁일 듯 보인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런 노력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인 우리 모두는 늘 매력적인(?) ‘본능에 한 발 걸치고 있다. 아직 완덕에 이르지 못한 나는, 언제든 유혹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 약한 존재다. 그렇기에 죽을 때까지, 끊임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유혹에 빠지면서어른이 되어 간다. 실수를 하고 죄를 짓고 그렇지만 또 용서를 받아 조금씩 성장하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러니 아이들의 실수가 용서를 받듯이,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인 나이만 먹은 우리들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어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 받지 못할 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용서 받지 못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진정으로 후회를 하고 용서를 청한다면 동물의 왕국이 아닌 성숙한 사회는 그이들을 용서를 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이들이 죄값을 치루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터트리신 첫 감탄사, ‘보시니 좋았다!’. 세상 창조물은 그 자체로 그분의 눈에는 좋은 것들 투성이였듯 보인다. 그것은 도 아닌 그 자체로 좋은 것들. 그러나 에덴 동산, 좋은 곳에서 쫓겨 나오면서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 본능을 자극하는 것들에도 자유롭게 동의하게 되었다. ‘하와가 선택한 달콤한 사과의 결과가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이라면, 우리가 빠져드는 매력(?)들에도 그만큼 치명적인 결과가 따르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면서 매력에 빠지기도 하고 그래서 그 비싼 댓가를 치르면서 성장한다. 이미 우리는 70, 80나이의 숫자어른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님을 잘 알게 되었다.

 

 4세기 이집트 동방 교부 마카리오스는 La bella túnica del alma, 육체는 우리 영혼의 아름다운 옷이라고 말한다. ‘자체는 그냥 보기 좋은 하느님의 창조물에 불과하지만 (‘도 아닌) 에 어떤 영혼이 깃들었냐에 따라 우리 영혼의 아름다운 옷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에덴 동산에서 떠나 오면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자기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그 옷도 덩달아 예쁜 옷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 누군가는 기도를 하면 얼굴이 예뻐진다라고 했고, 누군가는 어릴 적 보았던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자신의 모습에 웃음 짓기도 한다. 또 우리의 사부 이냐시오 성인은 예수님을 닮고 싶은 마음에 벗들과 함께 예수회를 창설하지 않았는가.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지금 내 몸에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