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인간이 만드는 길 본문
부산 성베네딕도 수녀원, 이해인 수녀가 사는 곳이다. 17년 만에 다시 찾았다.이제는 도시 개발로 빌딩 사이 해송과 동백에 둘러싸여 섬처럼 남겨졌지만, 평화와 수도의 기운은 여전했다. 해인 수녀의 거처는 동산 아래 해가 깊숙이 들어오는 민들레 방이다. 서가에는 논어와 시경, 장자, 수타니파타, 소네트 등이 빼곡히 꽂혀 있다. 특히 네 종이나 되는 논어는 귀퉁이마다 해져 수선한 테이프가 겹겹이고, 양장본 서문당 논어엔 윤기가 흐를 정도로 손때가 묻어 있다. 성경 다음으로 좋아하는 책이라고 한다.
선반과 바닥에는 택배 사무실 마냥 박스와 보따리가 쌓여 있었다. 독자와 지인에게서 온 선물이지만, 곧 다시 누구에게론가 흩어질 꾸러미들. 수녀원에 당도한 그 시각에도 다음 날 가르멜 봉쇄수도원 후원 모임에 나눠줄 묵은 달력으로 만든 고운 봉투며 엽서를 챙기고 있었다. 해인 수녀가 제일 좋아하는 선물은 나누기 좋은 선물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엄마수녀, 이모수녀라 부른다.
해인 수녀는 2008년 암에 걸렸지만 지금껏 잘 버텨내고 있다. 재발 없이 5년이 지났을 무렵, 안도하는 주위 분위기와 달리 해인 수녀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법원 공증을 마쳤다. 모든 저작권을 공동체에 일임하고 장례 역시 수도원에서 간소하게 치러질 것이라 한다. 이제야말로 떠나도 된다며 개운하게 웃었다. 몸 낮추며 살아온 50년의 수도생활이다. 공감과 배려를 성품으로 담으려고 애써온 그 시간 속에서 깨우친, 아픈 시대를 함께 견디는 지혜를 얻고자 그를 만났다. 수녀원 동백잎은 여느 곳보다 짙은 초록으로 반질거렸다.
이해인 수녀는 인터뷰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들 마음을 생각하면 아파요. 많이 아파요. 우리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잖아"라며 "함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
그런 모습들 가슴 아파
캄캄하고 암흑 같은 인생 그것이 오히려 더 정답
한결같은 걸음이 중요
▲ 그 아이들을… 우리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
부모들 생각하면 많이 아파
닫힌 마음 열려면 힘들고 과민 반응도 견뎌내야 해
그렇지만 내가 먼저 손잡아야
안희경(이하 안)= '우리 안에는 순한 마음이 있다'는 말씀을 20년 넘게 해 오셨어요. 그런데 세상은 더욱 거칠고 각박해져 가는데요.
이해인(이하 이)= 모든 인간 안에는 진실한 것과 선한 것, 참된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봐요. 내가 성선설 쪽이거든요. 윤동주의 서시처럼 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걸 계속 그리워하면서도 참 인간이 다면적이구나 느끼게 되는데, 훌륭하다는 사람 안에도 비굴함이 있고, 아주 악명 높은 이 안에도 굉장히 아름다운 어떤 것이 숨어 있고 그렇더라고요. 가끔 구상 선생님 생각이 나요.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까지 다 품어주고, 주례해 달라면 주례도 해주고 그러셨죠. 환속한 사제한테 당신이 자꾸 주례 서주니까 추기경님이 벌레 씹은 얼굴로 보더라,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아, 그러니까 왜 자꾸 그러세요?' 하니, 답이 명답이었어요. '사람들이 우정을 틀 때 장점부터 트지만, 나는 단점부터 튼다. 좋은 점만 보고 누군들 친구를 못하겠느냐. 손가락질받는 이라 해도 친구가 있어야 사니, 그 역할을 내가 하겠다' 그래요. 우정에 대한 지론이죠. 나도 그걸 본받아서 상처 많은 이들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그이들 마음을 열려면 공도 많이 들고 과민 반응도 받아야 하고 힘들죠. 지성적으로 멋있는 사람 만나면 나도 점잖고 좋아요. 하지만, 해야죠. 내가 먼저 해야죠.
안= 나이 들수록 종교를 찾는 친구들이 늘어요. 부름을 받았다며 열성을 보이고, 많은 기성세대들이 종교 따라 투표도 하고 광장에 나와 싸우기도 합니다.
이= 선교에 열을 올리고 그러는데, 난 종교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잘못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이번 교황님은 '개종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이 참 마음에 들더라고. 제일 당황스러운 질문이 사람들이 나 보고 예수님 언제 영접했느냐는 건데 그러면, '영접요?' 난 그러거든요. 생경하게 들리니까. 영성생활에서 드라마틱한 어떤 것을 꿈꾸는 거, 위험하다고 느끼거든요. 꾸준히 평범해야 하는데 드라마틱한 것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아닐 때 나락으로 떨어지더라고. 수도생활도 그래요. 수녀원에서 우리는 우스갯말로 너무 열심히 하는 걸 두려워한다고 해요.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 그때는 불에 타죽을 것처럼 그러다가 조금만 감미로운 기운이 떨어지면, 못 견디는 거야. 차라리 그 기운을 좀 아껴서 꾸준하게 한결같이 가는 걸음 그게 참 중요한 건데. 캄캄하고 암흑 같은 인생길이 오히려 더 정답입니다. '꿈에 나타나셨다' '답을 주셨다' 그러는 모습들… 많은 경우 난 거기서 아픔 같은 걸 느껴요.
안= 자기가 약해서 매달리려는 건가요? 아니면 자기 합리화일까요?
이= 도움받고 싶은 거죠. 자기 위로 내지는. 세계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판단 보류의 영성, 내가 종교학에서 배운 이론인데, 이게 실생활에 무척 도움이 되어요. '인간에 대해서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 보류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우리가 자꾸 실수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그러잖아요.
안= 익숙한 말로 설명하면 뭘까요?
이=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말라는 그런 말이겠죠. 제가 얻은 결론은 사람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거, 잘나면 얼마나 더 잘났겠어요. '참 너도 노력하는데 뜻대로 안되지?' 이렇게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사는 것이 제 결론이에요.
안= 하느님을 만났다고 공적인 자리에서도 말하는 신념을 이해해 보면, 혹시 큰 대상에 의지하면서 순해진 자신을 불러낸다는 그런 겸손의 뜻도 있지 않나 싶어요.
이= 물리적인 것이 아니고 달빛처럼 스며드는 꽉찬 빛의 느낌, 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십자가에 박혀 나타나는 그런 하느님 말고, 내 존재 안에 달빛처럼 스며들어서 내 마음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친척처럼 열린 이것을 나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보고 싶어요. 나도 이기적이고 굉장히 부족한 사람인데 다 내 식구같이 뭐라도 주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진 거, 또 내가 지금 암에 걸려서 고통스럽지만 원망하지 않고 이 아픔을 통해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씩씩하게 견뎌내는 이 힘, 이것을 나는 은총이라고 부르고 싶지. 성모님이 나타나서 안아주고 그런 건 아니죠. 그런 꿈을 꿀 수는 있겠죠. 나도 반 투안 주교님이 나타나서 성경책을 주는 꿈을 꾸긴 했어요. 그러나 그런 건 지나간 부분이고 거기에 취하면 안되는 거죠.
안= 수도의 길이 차근차근 익어가는 깨우침이라는 건가요?
이= 일상의 그 길, 아주 중요하죠. 그러니까 깨우침도 대나무처럼 매듭이 있는데, 거기까지 갔다가 안 풀려서 또 그렇게 있다가 또 다시 맺고, 그런 거 아닐까. 거룩함에 대한 개념도 지혜롭게 해야 해요. 예를 들면, 이렇게 귤과 사과가 있어요. 그럼 '맛있게 먹을게요' 하는 것도 아름답고, 또 어떤 사람은 '저는 굶주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 안 먹고 극기하겠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하면, 이 극기한 사람이 먹은 사람을 '너는 탐욕스럽다'고 막 비난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말하자면 그게 판단보류죠. 근데 우리는 안 먹은 사람이 먹은 사람을 굉장히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그럴 때 우리끼리 '저 사람 상투스야, 상투스'('거룩하시다'로 시작되는 성가곡) 이렇게 말하는데, 그 사람이 진짜 거룩해서가 아니라 입만 열면 거룩한 소리로 남한테 부담을 준다, 이 소리거든. 그래서 '천사표' '거룩하다'고 말 듣는 사람이 조심해야 됩니다. 함정이 있으니까. 맛있게 먹고 남을 비난하거나 그러지 않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더 겸손할 수가 있어요.
이=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이제 지식 습득은 그만하고 인간을 해석해서 배려하는 그런 시대로 넘어가야겠죠. 이런 시대에 부모 노릇하기 얼마나 힘들까요? 엄마 노릇 하기도 힘들고, 아내 노릇 하기도 힘들고. 그러니까 함부로 우리 같은 사람이 성경에 있는 말만 가지고 가정생활 하는 사람한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하면 그것도 겸손하지 못한 거지. 강연을 마치고 사인을 해 줄 때도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사인하는 걸 세속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난, 그 걸음을 해서 온 마음들을 지나칠 수가 없어는 거예요. 그 30초, 1분 안에 별걸 다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가 발달장애인데 수녀님 한 마디만, 우리 아들이 알코올 중독인데 수녀님 한 마디만, 다 그래요. 사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런 마음들을 알게 된 다음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아, 그러세요' 그러면서 꽃 그리고 스티커 붙여주고 하는데, 꽃 그리다가 또 높은 음자리표 그리면 '어머 수녀님, 제가 성가대하는 줄 어떻게 아셨어요?' 해요.
거기다 '내가 알긴 어떻게 알아요' 그럴 수는 없잖아요. 초를 치면 안되지. 그럼 또 '아, 수도생활 사십 몇 년 하다 보면 필(feel)이 다 옵니다' 그러지(웃음).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교감하는 거지.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 내가 있고 싶고. 내 글을 사랑해주니까 내가 있는 거지 내가 잘 나서가 아니잖아요? 겸손이 기본 덕인 거 같아요. 특히 수도 생활은. 자기의 약점을 자랑할 수 있는 겸손.
안= 약점을 자랑한다고요?
이= 사도 바오로가 '내가 자랑할 것은 약점밖에 없다' 이런 말씀을 했다고 성경에 나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살면 살수록 알겠더라니까요. 아!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가 있으면 살겠구나. 언제나 망신당할 각오가 있는 사람들은 살아요.
안= 약점을 드러내도 안전할까요?
이= 그렇게 봐주는 사회가 되어야죠 마침내. 근데 우리 정치인들도 약점을 자랑할 용기가 부족해요. 남을 탓하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게 안되나봐요. 우리나라 현 정부의 정치 지도자들도 그러고, 저기 일본 총리도 그러고. 인간이 참 자기도 모르게 어리석다고 할까. 오히려 어리석은 용기가 필요한데 말이에요.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탓했는지 아세요?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고 말로만 하고 같이 살아보질 못해서 거기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항상 말씀하셨어요. 당신은 평생 불면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또, 그분도 얼마나 비난의 대상이 되고 그랬어요? 기자가 '이렇게 사제단 신부 중에 한 분이 강력하게 비난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럴만한 요소가 있으니까 나도 비난을 받는 거다' 하셨죠. 저분은 항상 어리석음과 약점을 드러내놓고 사시는구나. 참 닮고 싶다 느껴지더라고. 굉장히 크고 덕을 이룬 분일수록 언어가 달라요.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할까? 젠체하거나 경건을 따지지 않고 자연스럽죠. 교황님도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하신 말, 얼마나 인간적으로 밀려와요. 근데 문제는 교황님이 다녀가고 그 감탄이 삶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니까 교우들은 교우들대로 회심이 일어나고 대중은 대중대로…. 참, 그러니까 교황님이 여러 번 다녀가셔도 현재의 리더들이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또 배우는 거죠.
안= 세월호, 아직도 많이 아프시죠? 최근 수녀님 에세이에서 제일 먼저 침몰 소식을 전하고도 구조되지 못했던 최덕하군 어머니의 문자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그중에, 자기 생명도 나눠줄 수 있다면 필요한 이들에게 주고 바람이 되어 아들 곁으로 날아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고백이 서늘하게 마음에 박혔는데요. 정작 수녀님이 보낸 메시지나 위로의 마음은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 의아했습니다.
이= 여러 신문사에서 청을 받았죠. 글을 써달라고. 못쓰겠더라고요. 내가 이제까진 청탁 오면 다 썼어요. 미국에서 한인 학생 총기 난사 사건이 났을 때도, KAL기 폭파 때에도, 또 중국 민항기가 떨어져서 사람 몇 백명 죽었을 때는 그 사이트까지 가서 글을 남겼어요. 그때가 2002년이었는데 사람들이 다 월드컵에 빠져있을 때. 해마다 여름이면 깨꽃이 핀다잖아요. 그때 승객들이 중국에서 깨를 봉지봉지 사가지고 와서 깨가 다 풀어져 가지고.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에요. 그랬는데, 세월호는 아무리 쓰려고 해도 도저히 안 나오더라고. 어떡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겨울에 책을 내면서는 뭐라도 마음 한 조각 넣고 싶은데, 그때까지 시도 안되고 산문도 안 나오고. 그러다 덕하 어머니가 보내오는 메시지가 있어 그 내용을 넣었던 거죠. 세월호 사고 나고 부산이랑 시청에 가서 국화꽃을 바치고는 했는데, 막상 현장에는 가지 못하겠더라고요. 팽목항에도 우리 수녀님들이 대신 가고. 아이들을 가장 많이 잃은 안산 와동 성당에는 우리집 수녀님 세 분이 가서 일을 하고 있어요. 덕하 엄마는 그 인연으로 여기 다녀간 거고요. 그 부모들 마음을 생각하면 아파요. 많이 아파요. 우리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 아이들을… 우리가.
안= 어른이 되면 슬퍼도 맘 놓고 슬퍼하기가 어려워요. 남은 헤아리지 못하는 슬픔이고, 게다가 지금 유가족들은 왜 아직까지 그러느냐는 사회적 비난에도 시달립니다. 아픔에서 빠져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겠죠?
이=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고, 함께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슬픔 속에 있는 사람한테는 어떤 말로도 사실 위로가 안되거든요. 내가 쓴 시 중에 '슬픈 사람에게는 위로하는 것도 겸손이 필요하다' 그런 글이 있어요. '슬픈 사람들에게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 주고 들키지 않게 꾸준히 기도해 주어요. /슬픈 사람들이 슬픔의 집 속에만 숨어있길 좋아해도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그가 잠시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대책 없이 울면 같이 울어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위로에도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 함께 배워가기로 해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이런 마음이 필요한 거 같아요.
안= 다들 고달프고 불안하니까 어딘가에 탓을 만들고 각박해지는 거 같아요.
이= 강의하면서 눈을 마주치면 이 시대의 한국 남성들, 아빠들도 참 고달프구나, 내 마음이 짠해져요. 내가 말로라도 '힘들 때가 많으시죠' 그러면 막 울려고 해. '그래서 김현승 시인이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또 그 말 들으니 위로가 된다고 하고. 마음 안에 다들 보이지 않는 슬픔과 공허함이 있는 거죠. 10대에 읽었던 시인데, 칼 붓세라는 사람이 썼어요. '산 너머 저쪽 더욱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나는 그를 찾아 남 따라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왔네.' 그래요. 멀리 있는 게 아닌 걸 우리도 알죠. 근데, 알면서도 계속 멀리 따라가요. 또 언젠가 한 번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안 죽을 것처럼 살고. 이런 게 인간의 어리석음인가 보다 생각하면, 그래도 이 어리석음 때문에 오늘을 살지, 맨날 죽음을 생각하면 허전해서 어떻게 살겠나 싶고. 가장 중요한 건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정말로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거기에 답이 있겠죠.
안=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조언이 있다면요.
이= 차가운 이성의 부름을 가져다 나 스스로 조절해야지 누가 도와줄 수 없는 거 같아요. 내 문제를 남들이 들어주기는 해도, 결국 그 남이 나는 아니거든요. 내가 나의 수련장이 되는 수밖에. 나도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수도 생활 50년을 했으면서 이것밖에 안되나 싶고. 내가 이상적으로 그려보는 그런 덕스러운 모습을 왜 정작 나는 못 가지고 있나. 한없이 부족함을 느끼죠. 그런데 이런 나에게 간혹 독자들이 '수녀님이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럼, '아, 내가 길을 안 바꾸고 여기서 버티길 잘했구나' 환희심이 차올라요. 제가 불교에서 좋아하는 단어가 환희심인데, 기쁨보다는 더 스며드는 마음 같다고나 할까. 햇볕이 들어와서 방을 덥혀주듯이. 그렇게 마음 얻어가며 사는 거죠.
안= 햇볕이 방을 덥혀주듯 배려의 온도가 높아지는 시절이 되면 좋겠어요.
이= 춥고 아플 때 햇빛 한 줄기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어느 날 아침에 광안리 바다에서 해가 올라오는 거예요. 눈을 못 뜰 정도로 눈부셨어요. 그때, 해 아래 사는 기쁨이 올라왔습니다. 아! 산다고 하는 것은 이런 햇볕과 함께 있는 거구나. 네, 달과 해를 통해서 우주 만물의 신비와 나 자신의 적응과 모든 인간의 지구 상의 연결을 느낍니다.
해인 수녀의 여닫이장에는 147권의 노트가 있다. 그날그날의 메모가 적힌 일기장이다. 아무거나 꺼내 펼쳐 봐도 된다고 하길래 '보여주려고 쓰셨어요?' 물으니 껄껄 웃으신다. 나이가 드니 이젠 다 아무렇지도 않다며. 대한민국이 해방된 지 70년을 맞았다. 이해인 수녀와 같은 나이다. 털어야 할 앙금도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용기로 풀고 햇볕 한 줄기 따뜻한 마음 모으면 어떨는지.
2014년 4월19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나흘째 되던 날, 해인 수녀의 일기장에는 '몸속의 슬픔, 몸속의 겨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슬픔도 얼어붙어 토해지지 않는 아픔이었나 보다. 지금도 아스팔트 냉골에 무릎을 찧고 등을 누이는 유가족들에게 해인 수녀의 마음이 닿기를 바란다.
<글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정연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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