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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자네는 신을 믿는가 본문

매일의 양식

자네는 신을 믿는가

해피제제 2015. 5. 26. 05:42

교수: 자네는 가톨릭신자이지?

학생: , 교수님.

 

교수: 그래, 자네는 신을 믿는가?

학생: 물론입니다, 교수님.

 

교수: 신은 선한가?

학생: 그럼요.

 

교수: 신은 전능한가?

학생: .

 

교수: 동생은 신께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암으로 죽었네.

대개의 사람들은 누군가 아플때 도와주려 하지.

하지만 신은 그러지 않았네. 이런데도 신이 선한가? 정말로?

(학생은 침묵한다.)

 

교수: 대답을 못하는군. 그럼 다시 묻지, 젊은이. 신은 선한가?

학생: .

 

교수: 그럼 사탄은 선한가?

학생: 아닙니다.

 

교수: 사탄은 어디서 태어났지?

학생: ... 하느님에게서 ... 부터지요..

(하느님은 루시퍼라는 천사를 만드셨다, 후에 타락하여 사탄이 ...)

 

교수: 그렇다네. 그러면 말해보게, 세상에 악이 있는가?

학생: .

 

교수: 악은 어디에나 있지, 그렇지 아니한가?

그리고 신은 모든것을 만들었지. 맞는가?

학생: .

 

교수: 그렇다면 악은 누가 만들었는가?

(학생은 대답하지 않는다.)

 

교수: 세상에는 아픔, 부도덕, 추함 등의 추악한 것들이 존재하지, 그렇지?

학생: 그렇습니다, 교수님.

 

교수: 그렇다면 누가 그것들을 만들었나?

(학생은 대답하지 않는다.)

 

교수: 과학은 사람이 세상은 인지하는데 5가지 감각을  사용한다고 하지.

그렇다면 대답해보게 젊은이, 신을 본적이 있는가?

학생: 못봤습니다, 교수님.

 

교수: 그렇다면 신의 목소리를 들어본적 있는가?

학생: 아니오, 교수님.

 

교수: 그렇다면 신을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맡은 적도 없는가?

신을 어떠한 감각으로도 인지한 적이 있는가?

학생: 아니오, 없습니다. 교수님.

 

교수: 그런데도 아직 신을 믿나?

학생: .

 

교수: 과학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논증으로  신이 없다고 말하네.

자네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생: 저는 단지 믿음 있을 뿐입니다.

 

교수: 그래, 믿음. 그게 과학이 가지지 못한것이지.

 

학생: 교수님, 세상에 열이란 것이 있습니까?

교수: 물론이지.

 

학생: 그러면 차가움이란 것도 있겠지요?

교수: 그렇다네.

 

학생: 아닙니다 교수님. 그런것은 없지요.

 (강의실은 반전에 순간 적막이 흘렀다)

 

학생: 교수님, 많은 , 많은 , 초열, 백열, 아니면

아주 적은 열이나 열의 부재는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가움이란 것은 없지요.

영하 273도의 열의 부재 상태로 만들수는 있지만   이하로 만들 수는 없지요.

차가움이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가움이란 단어는 단지 열의 부재를 나타낼 뿐이지  그것을 계량할 수는 없지요.

열은 에너지이지만, 차가움은 열의 반대가 아닙니다 교수님.

그저 열의 부재일 뿐이지요.

(강의실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학생: 그렇다면 어둠은 어떻습니까, 교수님?

어둠이란 것이 존재하나요?

교수: 그렇지. 어둠이 없다면 밤이 도대체 오는가?

 

학생: 그렇지 않습니다, 교수님.

어둠 역시 무엇인가 부재하기 때문에 생기지요.

아주 적은 , 보통 , 밝은 , 눈부신 빛이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아무 빛도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둠이라 부르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제로 어둠이란 것은 없지요.

만약 있다면 어둠을 어둡게 만들수 있겠지요,

그렇수 있나요?

교수: 그래, 요점이 뭔가, 젊은이?

 

학생: 교수님, 요점은 교수님이 잘못된 전제를 내리시고 있다는 겁니다.

교수: 잘못되었다고? 설명해 있겠나?

 

학생: 교수님, 교수님은 이분법적인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생명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선한 신이 있으면 악한 신이 있다는 논지이지요.

교수님은 하느님을 유한하고, 우리가  측정 가능한 이라 보고 계십니다.

교수님, 과학은 우리가 생각할 있다는 조차 설명을 못합니다.

전기와 자기를 말하지만, 볼수는 없지요.

완벽히 이해할 없는건 물론이구요.

죽음을 생명의 반대로 보는건 죽음이란 것이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무지해서 그런겁니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가 아니라 단지 생명의 부재일 뿐이지요.

교수님은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가르치십니까?

교수: 자연 진화 과정을 말하는거라면 그렇다네.

 

학생: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을 눈으로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교수님?

 (교수는 논리가 성립되어감을 보고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학생: 아무도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못격하지 못했을 아니라

과정을 증명하지도 못했으니  교수님은 개인의 의견을 가르치시는 거겠군요,

교수님. 마치 과학자가 아닌 연설가 처럼요.

(강의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학생: 강의실에 교수님의 뇌를 사람이 있나요?

(강의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학생: 여기에 교수님의 뇌를 듣거나,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맡은 적이 있는분 계십니까?

               ...

아무도 그런적이 없는것 같군요.

그러면 과학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논증으로 교수님의 뇌가 없다고 말하는군요.

그렇다면 교수님의 강의를 어떻게 신뢰할 있습니까?

(강의실은 고요했다. 교수는 심오한 표정으로 학생을 응시했다.)

 

교수: 사실을 믿는 밖에 없겠군, 젊은이.

학생: 바로 그겁니다, 교수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믿음" 입니다.

그게 바로 모든 것을 움직이고 생명있게 만드는 것이지요.

 

 

오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한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가두고 있는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어 주시며 성령을 받아라하십니다.

그리고 1독서에서는,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라며

성령을 경험한 사도들이 당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믿음의 언어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박신부님과 제가, 과학과 경험만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물리학자 교수님과

신앙인인 물리학도 제자 사이의 대화를 연극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물리학자인 교수님도 여러가지 사실들을 증명해 내지는 못하지만

원숭이에서 사람이 되었다는 진화가 존재하고,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화가나는 마음이 존재하고,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가 존재한다고

과학자인 자신이 그렇게 믿고있음을 제자들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고백하고 있는 믿음이란 이렇듯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체험을 한 후, 자신들이 체험한 것들을 신앙의 언어,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믿음과 사실은 차원이 다른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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