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주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일 본문
1독서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복음말씀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단상
홧김에 내지른 표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금 알아 듣게 되고
감정을 꾹 꾹 눌러 담는다 했지만 다시 읽어 보니 그 감정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감정 그대로 눈치 챘을 벗들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이런저런 생각에 얼굴이 화끈 거리고
혹여 그 당사자는 '다시는 찾지 않겠다' 했지만
그래도 그 나눔을 듣게 되면 또 미안함에 지금이라도 당장 '비밀번호'를 걸어 두고 싶은 심정이다.
바쁘게 보낸 하루지만 두근두근 난리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렇게 매번 제 말에 걸려 넘어지시려면 찾지 마세요' 한 것 같아
몇 번의 조심스러움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벗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일일이 해명을 하게 될 때면 살짝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이고
그렇게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드디어 지 성질 못 견디고 이렇게 난리굿판을 벌려 놨으니
이 나눔을 접하고 여기저기 또 댓글로 일깨움을 주시는 벗들이 있다.
그 위로들 따끔한 충고들 그리고 질투 섞인 감정들 게다가 노래 선물들까지 한 아름 받고 나니
또 이 사단의 벗이 내게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수사님은 아프면 죽을 끓여 주는 친구도 있고, 위로를 해 주는 이들도 있고,
이곳저곳에서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있어서 훌 훌 털고 일어서겠지만
저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나요?"
다시금 벗들의 다양한 위로와 체험과 조언들을 받아 들면서
이 모든 것들이 그래도
'이 나를 향한 마음들이 있기에 이렇게 위로도 따끔한 말들도 해 주시는구나'
그이들이 시간을 내고 생각을 정리해서 한 자 한 자 깊게 전해 주시니
그 마음들에 고마움을 더한다.
아울러 한 벗의 충고처럼 이 사단의 벗이 그냥 그런(?) 벗이었다면 아무런 감정 표현도 없었겠지만
마음 맞는 벗으로 소중히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밀고 당기는 모습에 오히려 질투가(?) 난다는 댓글에 오히려 부러움을 전해 듣는다.
그러고보니 스쳐지나는 관계라면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을 정도로만 알고 지내면 될 테지만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몇 안되는 벗인지라 이 사단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배우게 된다.
내가 늘 그 벗에게 해 준 말 '제 이야기에 걸려 넘어지지 마세요' 라는 말에
돌이켜 보니 내가 그 벗의 말 마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 것은 아닌지 머물게 된다.
그이가 무슨 말을 하든 내가 걸려 넘어질 것이 없어 자연스러웠다면 이 사단도 없었을텐데
이 아침까지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아 단단히 걸려 넘어진 것은 아닌지...
무언가 올라오는 것이 있으니 보여 주시는 것들에 당분간 귀 기울여 볼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보여주시는 것들이 분명히 나를 성장케 할 것이고
또 그 벗에게 더 자유롭게 다가설 수 있도록 더 큰 무언가를 일깨워 주실 것이다.
그분은 늘 이렇게 나를 못살게 하신 후에야 선물을 찔끔 안겨 주셨다.
그리고 그 찔끔 선물 덕분에 이렇게 살아 간다는 것도 알아 듣게 된다.
물론 그 벗 역시 나와의 어색함을 통해 또 무엇인가 선물을 받아 들게 되리라.
분명히 그리하실 것이다.
에고 언제쯤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려나
이 생 끝나기 전까지는 참으로 요원해 보이는 일이다.
부득부득 이 모자람들 끌어 안고 또 하루 좌충우돌 살아가볼 일이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복음말씀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단상
홧김에 내지른 표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금 알아 듣게 되고
감정을 꾹 꾹 눌러 담는다 했지만 다시 읽어 보니 그 감정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감정 그대로 눈치 챘을 벗들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이런저런 생각에 얼굴이 화끈 거리고
혹여 그 당사자는 '다시는 찾지 않겠다' 했지만
그래도 그 나눔을 듣게 되면 또 미안함에 지금이라도 당장 '비밀번호'를 걸어 두고 싶은 심정이다.
바쁘게 보낸 하루지만 두근두근 난리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렇게 매번 제 말에 걸려 넘어지시려면 찾지 마세요' 한 것 같아
몇 번의 조심스러움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벗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일일이 해명을 하게 될 때면 살짝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이고
그렇게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드디어 지 성질 못 견디고 이렇게 난리굿판을 벌려 놨으니
이 나눔을 접하고 여기저기 또 댓글로 일깨움을 주시는 벗들이 있다.
그 위로들 따끔한 충고들 그리고 질투 섞인 감정들 게다가 노래 선물들까지 한 아름 받고 나니
또 이 사단의 벗이 내게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수사님은 아프면 죽을 끓여 주는 친구도 있고, 위로를 해 주는 이들도 있고,
이곳저곳에서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있어서 훌 훌 털고 일어서겠지만
저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나요?"
다시금 벗들의 다양한 위로와 체험과 조언들을 받아 들면서
이 모든 것들이 그래도
'이 나를 향한 마음들이 있기에 이렇게 위로도 따끔한 말들도 해 주시는구나'
그이들이 시간을 내고 생각을 정리해서 한 자 한 자 깊게 전해 주시니
그 마음들에 고마움을 더한다.
아울러 한 벗의 충고처럼 이 사단의 벗이 그냥 그런(?) 벗이었다면 아무런 감정 표현도 없었겠지만
마음 맞는 벗으로 소중히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밀고 당기는 모습에 오히려 질투가(?) 난다는 댓글에 오히려 부러움을 전해 듣는다.
그러고보니 스쳐지나는 관계라면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을 정도로만 알고 지내면 될 테지만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몇 안되는 벗인지라 이 사단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배우게 된다.
내가 늘 그 벗에게 해 준 말 '제 이야기에 걸려 넘어지지 마세요' 라는 말에
돌이켜 보니 내가 그 벗의 말 마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 것은 아닌지 머물게 된다.
그이가 무슨 말을 하든 내가 걸려 넘어질 것이 없어 자연스러웠다면 이 사단도 없었을텐데
이 아침까지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아 단단히 걸려 넘어진 것은 아닌지...
무언가 올라오는 것이 있으니 보여 주시는 것들에 당분간 귀 기울여 볼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보여주시는 것들이 분명히 나를 성장케 할 것이고
또 그 벗에게 더 자유롭게 다가설 수 있도록 더 큰 무언가를 일깨워 주실 것이다.
그분은 늘 이렇게 나를 못살게 하신 후에야 선물을 찔끔 안겨 주셨다.
그리고 그 찔끔 선물 덕분에 이렇게 살아 간다는 것도 알아 듣게 된다.
물론 그 벗 역시 나와의 어색함을 통해 또 무엇인가 선물을 받아 들게 되리라.
분명히 그리하실 것이다.
에고 언제쯤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려나
이 생 끝나기 전까지는 참으로 요원해 보이는 일이다.
부득부득 이 모자람들 끌어 안고 또 하루 좌충우돌 살아가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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