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착한목자는 자기 목숨을 '버린다' 본문
2013년 12월크리스마스를 앞두고 3박4일간 일정으로 하라마치 가톨릭자원봉사센터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 온 후 동북부로는 처음 다니러 가는 길이었고, 게다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지역에서 20킬로 밖으로는 가장 가까운 베이스캠프로, 동일본 지진과 쓰나미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의 20킬로 안에서 살던 1만에 가까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 여전히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난지 3년이 가까운 터라 전체 주민 7만의 인구 중 5만이 되돌아 와서 마을 재건을 위해 힘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2만에 가까운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은 마을로 돌아오지 못한 채 전국 여기저기로 흩어져 다시 처음부터 친구를 사귀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지역 시민단체의 간사님의 안내로 피해지역 15킬로 안에까지 들어가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학교, 병원, 관공서, 멋진 결혼식장 등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깜빡깜빡 빨간 점멸 신호가 켜진 신호등도 불이 들어와 있었고, 여기저기 집들 사이로 자동차도 보였습니다. 여느 마을과 다름 없는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을 비롯한 생명 있는 존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유령도시처럼 말입니다.
3년이 되어가는 하라마치 자원봉사센터에는 저와 인도인인 보니 신부님이 봉사활동을 오기전 고등학생 40여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역의 할머니 세 분이 하루 종일 이불을 널고, 센터 안팎을 청소 중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큰 규모의 봉사자들은 모두 되돌아간 상태였고, 저희 둘, 그리고 초등학교 음악선생님과 양호선생님, 70대의 할머니 한 분이 센터에 남아있었습니다. 머리도 하얗게 새고, 허리가 굽어진 마을 할머니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 온 저희들을 맑은 웃음으로 맞아주시고 손수 저녁식사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빙 둘러 앉아 하루 동안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에서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봉사센터의 몸짓 자그마한 세 분 할머니가 글쎄 모두 수녀님들이라는 것입니다. 동일본 지진과 쓰나미가 있고, 동경교구의 가톨릭 까리따스 봉사센터가 세워지고 3년이 다 된 그날까지, 세 분은 각자의 수도원에 청을 해서, 후쿠시마 하라마치에서 생활해 오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수도복이나 베일도 없이 마을의 평범한 할머니들처럼, 찾아오는 봉사자들을 편안한 웃음으로 맞이하며, 아침부터 밤, 센터 불이 꺼질 때까지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청소며, 빨래, 물품과 도구 정리, 그리고 봉사자들의 식사도 도맡아 담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세 분 중 성심수녀회 수녀님과 성령선교수녀회 수녀님은 두 분 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분들이셨습니다.
저는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수녀님, 80이 넘으신 연세에 왜 이곳에 계시는 겁니까? 수녀원에서 가라고 해서 오신 것인가요?” 그러자 수녀님이 아기같은 표정으로 대꾸하십니다. “수사님, 저는 이제 80이 넘었습니다. 한 평생 원 없는 삶을 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나이에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마지막 소임을 다하고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젊은 수녀님들은 아직 할 일이 많잖습니까?” 하십니다.
오늘 요한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라마치 베이스캠프에서 만났던 세 분 수녀님을 기억했습니다. 인도의 성녀 데레사처럼 모두에게서 존경을 받는 분들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첫눈에 그분들을 뵈면, 틀림없이 시골마을의 쪼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들이라고 생각할 겝니다. 그런데도 이제부터 편안한 말년을, 후배 수녀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보내실 수 있을텐데, 그런 수도원을 떠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후쿠시마에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남들이 알아주는 일도 아닌, 청소며 밥 짓는 일로 당신들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소임을 다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숙제꺼리를 안고 도쿄로 돌아오는 그밤, 서울 고모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봉사활동을 다니러간 사이에, 수도원에서 전화를 받은 한 수사님이, 제가 후쿠시마로 자원봉사를 떠났다고 말하는 터에 집에서는 온통 난리 아닌 난리가 난 것입니다. 가족들은 ‘안그래도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것도 걱정되어 죽겠는데, 왜 일부러 후쿠시마 같은데로 봉사활동을 가느냐’며 나중에 몸이라도 아프면 어쩔거냐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목소리입니다. 전화기 너머의 고모님을 찬찬히 달래면서, 세 분 수녀님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평생 수도자로 살 것이니 결혼을 할 일도, 그래서 아이들을 낳을 일도 없을 것이며, 세 분 할머니들처럼 아프고 상처 받고 그래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나중에 나이가 들고 병이 찾아와도, 그 마지막 날에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라고, ‘내놓는다’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그런데 일본어로 성경을 읽다보니 이 ‘내놓는다’라는 말이 ‘捨てる(버린다)、즉 命を捨てる(목숨을 버린다)’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이렇게 우리 주위의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그이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게 된다면 오늘 2독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다시 하느님을 만나는 날, 우리도 그분과 같은 모습이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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