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참을 '忍' 자 세 개 본문
참을 忍자 세 개의 배움
피정 중, 오전과 오후 두 번의 기도 안내를 받게 된다.
피정 동반자 신부님이 8일 동안의 피정을 위해 기도를 잘(?) 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 주시는 것이다.
기도 자료, 즉 성경 구절과 필요한 것들을 짧게는 10분, 길어야 30분 정도로 피정자를 도와 주게 된다.
15년 째 연피정을 해 오면서 영신수련의 이냐시오 기도 방법과 흐름들을 알기에
피정 동반 신부님을 통해 기도 자료와 피정 면담 만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나 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은 더 좋은 방식으로 당신의 뜻으로 이끌곤 하시니
이번에도 처음 계획과 다르게 11명의 나이 지긋한 수녀님들의 그룹에 합류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공동 기도를 통해 그분들과 나의 하느님께 적잖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분은 늘 이렇게 내 계획을 잘도 바꾸곤 하신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자꾸 내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으니
피정 동반자 신부님의 매 번 늘어나는 강의가 그렇고
또 강의의 내용이 이미 15년 간 들어왔던 이냐시오 기도 방식의 그것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니
내게는 오전, 오후 2번의 강의 시간이 갈수록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피정 그룹과 함께 하는 것에 여러가지 장점도 많지만
해가 갈수록 대동소이한 강의에 특별한 영성가들을 초대하여 기도 안내를 받는 관구 피정이 아니면
예수회원들이 점 점 개인 피정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튼 80세, 오랜 동안 피정을 지도해 오셨던 신부님은
그분이 살아 오셨던 세월 동안의 지혜와 경험 그리고 영성을 피정자들에게 전해 주시기 위해 애쓰신다.
그런데 그 경험과 지식들의 나눔이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반복되면서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설명들에 나의 기도에 점차 '피정 지도 신부님'이 들어 오게 된 것이다.
즉 방금 전 강의에서 '참을 인'자 세 개를 그으면서
그 신부님을 향해 가지는 '짜증' 섞인 내 반응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그것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시선'에 주의가 쏠렸다.
나: '아 진짜 왜 이리 질질 끌며 설명을...'
하느님: '나이를 먹으니 기억력도 말도 행동도 느려졌구나'
나: '포인트만 딱 전해 주면 안될까?'
하느님: '어떻게 해서든지 네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애쓰는구나.'
나: '나이를 먹으면 하루 빨리 은퇴해야 되겠구나'
하느님: '은퇴할 나이에 일본 교회의 사정상 여전히 현장에서 고생이 많구나'
나: '나원 참 점 점 기도 할 시간이 사라지겠네'
하느님: '오랜 시간 참으로 애 많이 썼다 나의 종아'
나: '훌륭한 영성가와 그 영성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동반자의 실력은 별개 일 수 있겠구나'
하느님: '그이는 그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네게 전해 주려 하는구나'
고요히 그분 앞에서 방금 전 강의에서 올라 온 내 '짜증'의 감정을 마주하고 있자니
당신은 또 이렇게 내게 당신의 '시선'에서 볼 수 있게 하신다.
며칠 동안 계속 신경을 자극했던 이번 피정의 영적 동반자에 대한 내 감정을
하느님 그분께서는 또 이렇게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신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이번 피정은 쉽다(?)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고, 잘 기도하고...모든 것이 편안하다 싶었다.
그런데 의외의 변수, '피정동반자'가 내 침묵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그분이 내 기도의 주제가 되었고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 주신 '숙제'를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쉬운 피정'을 통해서도 그분은 지금 내게 필요한 것들을 은총으로 주시는 분이다.
더불어 역시나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 당신은 당신의 선물들을 전해 주신다.
'참을 인'자 세 개를 며칠 째 손바닥에 써 내려가면서
나는 또 이렇게 그분의 학생이 되어 간다.
'스승이신 하느님, 제가 세상 모든 것 안에서 배우는 학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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