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천주교 신부라면...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천주교 신부라면...

해피제제 2020. 7. 10. 15:19

Spain Málaga의 예수성심공동체 현관 로비

천주교 신부라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을들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 마태 10,1;5-7

 

아래 층 직원에게서 한국인에게서...’ 라며 전화 안내가 와 있었다. ‘통화버튼을 눌렀더니 수화기를 통해서 얼마 전 내게 진지한(?) 기도 거리를 안겨준 그 형제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흘러 나왔다.

 

며칠 전, 한국인 한 명이 ‘26성인기념관을 방문해 왔다. 그이가 살고 있는 집 근처 성당을 찾았다가 일본인 신부님으로부터 한국인 신부가 이곳 나가사키 ‘26성인기념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부재중에 방문했었단다. 그리고 그날 내가 근무중일 때 다시금 찾아 온 것이다.

 

한일 관계가 틀어진 작년 7월 이후 모처럼만에 기념관을 찾은 한국인이기에 나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고 그이는 내 웃음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뜸 이렇게 멋진 분이신줄 몰랐습니다라며 악수를 건네왔다. 그러나 그이가 칭찬한 그 멋진 웃음이 나중에 헤어지는 자리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이는 연신 내 첫 인상이 좋다는 칭찬과 함께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시시콜콜 나누어 주었다. 어찌나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는지 나는 연신 그 멋진 웃음을 지으며 그이의 막힘없이 흘러 나오는 사연들에 귀를 기울였다. 그이는 부산에서 오랫동안 서비스업에 종사하였고 그 인연으로 만난 일본인 부인과 함께 은퇴 후에는 나가사키로 생활터전을 옮겨 생활한지 10, 어느덧 60대 중반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아직도 할 일이 많다며 열정을 담아 처음보는 내게 이런저런 계획들을 들려주었다. ‘참으로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덧 1시간이 훌쩍지나고 2시간을 넘어 설 무렵, 나는 조금씩 대화에서 집중력이 떨어졌고, 그래서 어느 정도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사연 많은 그이도 그것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곧 기념관 폐관시간이 가까워지는 것을 핑계로 그날의 만남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유를 들어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전했다.

 

그러자 그이는 만남이 조금 아쉽다며 폐관 후 저녁식사 혹은 맥주 한 잔 하기를 청했다. 나는 그 초대에 선뜻 응답할 수 없었다. 긴 이야기로 조금 피곤해진 것도 있고 근처 본당의 토요일 저녁 주일 미사를 부탁 받았기에 그의 초대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그이에게는 내 식사 초대 거절이 그이의 무엇인가를 건들게 되었는지 미사를 마치는 시간을 물으며 다시금 맥주 한 잔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나는 미사 후에도 고해성사 등 이런저런 일로 신자들과의 시간을 가져야 하기에 다음을 기약하지며 그이의 집요함을 털어냈다.

 

자신이 거절 당했다고 느꼈던 걸까? 그이는 마음이 상했는지 정색을 하면서 날카로게 쏟아낸 말들이 한동안 나를 기도의 자리에 나앉게 만들었다.

 

김신부님, 나는 신부님을 믿고 내 모든 것을 이야기 했는데 신부님은 내가 미덥지 않은가 봅니다. 신부님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저 가식적인 모습으로 웃고만 있으니 나는 그 웃음이 진짜로 웃음인지 의심이 듭니다. 아까부터 자꾸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을 하시는데 천주교 신부라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방금 전 아래층 직원에게서 걸려 온 전화도, 기념관 총책임자인 매니저가 면담실을 지나면서 힐끗 바라보던 시선도, 그리고 내가 그날 본당에서 저녁 미사를 집전해야 한다는 것도, 사실 모든 것이 그이를 떼어내기 위한 핑계라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2시간이 넘게 나누었던 것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 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말도 안된다며 오해가 없기를 사정했음에도,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한 것들에 대해서 내 모든 말들은 그저 그이를 떼어내기 위한 수작(?)이라고 마음을 정해 놓은 듯 싶었다.

 

결국 그이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 마음을 터 놓았는데 실망이 큽니다라는 말로 마지막까지 깊은 생채기를 내고 떠나간다. 괜한 날벼락에 나 역시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한 것인지 복잡한 감정이 올라 오면서, ‘내 웃음이, 내 친절이, 내 대답이 불편했다면 미안하다. 그렇지만 형제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진심을 다했기에 나는 오히려 형제의 반응에 많이 당황스럽다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속이 상한 나는 며칠을 끙 끙 대며 기도의 자리에 나앉았다. ‘천주교 신부라면...’ 이라는 말에 계속 마음이 복잡해 지면서 예수님 제자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를 죄책감도 슬며시 올라왔다. 그러면서 그이와 같은 이들을 만나게 될 때는 (그이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나는 그저 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같은 한국인, 삶의 경험 별로 없는 나이 어린 후배, 어른이 청하는데 술 한 잔 하기를 거부하는그냥 예의 없는 한국인인 모양이다.

 

아마도 그이는 나와 이야기 하는 동안 나의 수도자로서의 생활양식과 태도가 어느정도는 거리감으로, 또 어느정도는 벽으로 느껴졌었나 보다. 수도자가 무엇인지, 우리들의 생활양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이에게는 내 모든 몸짓들이 그이를 한사코 떼어내려는 수작으로 비쳐졌었나 보다. 그럼에도 그이가 느낀 벽과 거리감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것에도 나의 속상함에 대한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그이가 무엇을 바라고 왔는지 확실히 묻고 (친절함이 능사가 아니다) ‘사람 좋은 웃음이 아닌 솔직하게 그이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답했어야 했을 것이다. 어중간한 친절이 그이를 실망케 하고 결국 화를 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완덕에 이른 성스런 사제가 아니라 여전히 배우고 있는 아마추어 사제인 것이다. 신자들이 신부님, 신부님존경을 담아 대해 주니 마치 내가 전문가, 완성된 사제라고 착각했었나 보다. 그래 보인다.

 

 

앞의 마태오 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뒤 따르는 많은 이들 가운데 열둘을 택하신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당신의 치료와 기적과 말씀의 능력을 나누어 주시며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신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세상 끝까지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유언을 하시던 28장의 세상 끝 파견 명령과는 달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첫 제자들을 임명히실 때의 예수님은 아직 훈련이 덜 된 초보 제자들을 배려하시는 듯 하다. 열두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시면서 세상에 처음 데뷰를 준비 하신다. 그러면서 하나씩 둘씩 당신이 손수 칭찬과 호통으로 가르쳐 주신다.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법, 아픈 이들의 손을 위로하며 잡아 주는 법, 마귀들린 이들이 아닌 마귀 그 존재들을 꾸짖어 쫓아내는 법 등 등 당신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실 때를 대비하여 제자들을 기르신다. 그리고 떠나가실 날이 왔을 때 그분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9-20) 라고 세상 끝으로 파견하신다.

 

예수님께 처음 선발된 제자들은 지금의 나처럼 아직은 미숙하고 어리버리해서 그분의 도움이 필요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나는, 또 우리들은 아직 완덕의 경지에 이른 그리스도인들이 아님을 고백하고 그래서 그분께 도움을 청하기를 주저 말아야 하겠다. ‘신부라면...’,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이라는 말들에 속지말고 겸손히 약함을 고백하면서 그러나 그분이 나를, 또 우리를 훈련시켜 주실 것을 신뢰하며 나서보아야 하겠다.

 

지금껏 앞서서 이끌어 주셨듯이 앞으로의 여정도 함께 걸어 주실 것을 희망하며 며칠 전 기도의 자리에서 선물로 주신 가르침들에 하느님 찬미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