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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친절함에는 이유가 있다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친절함에는 이유가 있다

해피제제 2019. 9. 29. 16:58

한국에 있는 동안 주한일본대사관 앞 1403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피해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석해 보았다

 

친절함에는 이유가 있다

 

한국을 방문하고 일본 삶터로 돌아오니 다짜고짜 박물관 매니저가 하소연을 해온다. 9월달 '26성인(聖人) 기념성당'에서의 한국인 성지순례단의 미사 예약이 단 한 건도 없단다. 요즘 한일관계가 계속해서 악화 되고 있음은 미디어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민간차원의 교류까지 이렇게 온도차가 확연하게 날 정도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그이의 투정에도 이해가 간다. 실제로 큐슈 나가사키의 26성인 기념박물관 방문자 80%가 한국에서 오는 순례자들이다. 유럽에서 일본으로 천주교를 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1549년 8월, 성인이 처음 발걸음을 내딛은 큐슈의 가고시마를 비롯해, 히라도, 야마구치, 오이타, 교토 등을 순례 하기도 하고, 1597년 2월, 바오로 미키 성인이 처형된 현재 26성인 기념박물관이 위치한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을 비롯해 뜨거운 온천물에 배교할 것을 강요하며 천주교인들을 넣어 고문했던 '운젠지옥' 등의 순교지를 차례로 순례한다.

 

일본 전체 인구의 0.4%도 되지 않는 일본의 천주교 신자들은, 언젠가 한 번씩은 큐슈 순교지를 방문했던 고령화된 신자들은, 더 이상 이곳 26성인 기념박물관과 성당을 방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나가사키의 부흥 역사가 일본 가톨릭 태동의 그것과 함께 시작되었기에 교과서에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과 예수회의 이름이 실려있고, 그래서 일본 학생들의 야외학습체험과 수학여행 코스로도 당연히 필수에 해당한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아니기에 기념성당을 박물관 견학 오듯 신기해 할 뿐 미사를 봉헌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26성인 기념박물관과 성 필립보 기념성당의 매니저인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걱정이 많은 것이다.

 

          그러면서 몇 가지를 이유를 들며 나의 생각을 묻는다.

 

1. ‘정치가의 '내셔널리즘' 선동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에 대해서

 

우리 매니저 왈,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는 그 난관을 타개할 계책으로 '공공의 적'을 상정한다. 아베 정부는 GDP 253%를 넘어선 국가부채, 10% 소비세율 인상, 대미 무역협상 실책 등을 감추기 위해, 가장 만만한(?) 한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상정 했고, 그래서 수출규제를 단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의 똑같은 선동으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라든지, 일본 여행 안 가기 등은 너무 감정적이고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힌 대응이 아닌가?"

 

내가 이 사태를 바라보는 한에서는, 먼저 아베 정부는 ‘일본에서 수입한 전략물자들을 북한에 몰래 수출하고 있다’는 '되도 않는 이유'를 들어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당연히 아베는 한국이 금방 굴복해 올 것이라고 예상을 했으나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개싸움은 국민이 할 것이니 정부는 정도(正道)로 일본에 대응하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고, 이런 예상치 못한 대응에 일본 경제계는 물론, 기존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던 곳들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곳 26성인 기념박물관 역시 한국인 순례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 들자 우리의 매니저는 '한국인들은 문 대통령의 내셔널리즘 선동에 속지 말야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가벼운 항변을 해 온 것이다. 그이 역시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 안 가기 운동’이 이전의 불매운동과 같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이러한 사태가 있기 전, 올 해 G20개국 정상회담에서 조차, 아베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대해 아무런 사전 공지도 없었다. 게다가 국가간 상호 자유무역의 지지와 확대의 옹호 연설까지 정상회의에서 아주 천연덕스럽게 발표했다. 그리고 그 연설이 있었던 3일 후,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듯이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한국에 대해서 '되도 않는 이유'를 들어 경제 전쟁을 일으켰다.  

 

'되도 않는 이유'라고 따옴표를 했다. 한국과 북한이 분단 이후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주적'으로 규정하고 어떤 긴장관계를 이루어 왔는지 그 역사를 일본의 아베는 모르지는 않을텐데 북한에게 핵무기를 개발하라며 일본에서 수입한 전략물자들을 빼돌려 북한에 수출해주었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라니, 북한 중앙방송의 멘트를 빌려 표현하자면, '난장이 섬나라 왜놈들의 속 좁은 트집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남·북한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우리 일본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자신들이 배제되는 한반도 상황이 질투가 나서 어깃장을 놓고 싶었노 라고, 그리고 한국과 북한이 통일을 하게 되면 자신들이 남·북 긴장을 통해 얻었던 이익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 라고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덜 추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매니저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즉 ‘정치가의 “내셔널리즘”에 선동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 주장은,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항변할 것이 아니라 아베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에 맹목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60%가 넘는 일본우익과 일본인들을 향해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수출 규제에 대해 자국의 정치와 정치가에 대해서는 'No 아베'를 외치지 않는지를 그들 자신의 모습을 먼저 성찰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 매니저가 알았으면 하는 것은, 이번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안 가기 운동은 문재인 정부의 선전선동에 의한 것이 아닌, 한국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기업인과 정치인 그리고 혐한 방송인들이 공공연히 야유하며 비아냥댔듯이, 과거 정부 주도의, 시민단체 주도의 불매운동은 대부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실패하지 않았던가.

 

남을 해코지 하려는 마음으로 억지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오래 가지 못한다.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담아 친구들과 즐기며 행하는 것들은 이렇듯 일상의 운동으로 자리 잡게 마련이다. 이번의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안 가기가 그래 보인다. 아베가 얼른 이것을 깨닫고 한국인이 왜 이리 분개하는지, 좀 더 잘 알아 들었으면 좋겠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가 그것을 영영 깨닫지 못해서, 한국의 다른 좋은 제품들이 국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한국의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의 부품 소재들이 더욱 많이 개발되고 쓰여졌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뽀를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다.      

 

2. ‘일본은 언제까지 한국에 사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 물음을 시작하면서 우리 매니저는 자신이 중국계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역시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자신 역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중국계로 일본에서 차별을 경험했으며 그럼에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은 일본인들을 미워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1945년 ‘나가사키 원폭’과 ‘도쿄 대공습’의 예를 들며, 자신의 친척들을 비롯해서 많은 동네 친구들과 민간인들이 원폭으로 사망을 했고, 또 도쿄 대공습에서는 민간인 거주지를 직접 겨냥하여 죄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사망했단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에 대한 사과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정부 차원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음에도 미국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단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어째서 과거의 사건에 잔뜩 붙잡혀,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일본은 한국에 대해 사죄를 해야만 하는지 그것이 못내 답답하단다.

 

또 그런 이유로, 아베가 옳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이제까지 사죄 일변도의 앞선 정치인들과는 달리, 아베는 일본인들이 감히 하지 못했던 마음 속 숨겨진 생각들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주고 있으니, 오히려 국민들이 지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면서 ‘위안부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와 같은 전국 곳곳의 일제식민지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한국의 역사 교육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이런 강력한 시각적인 수단들로 인해 한국과 일본 관계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역시나 조심스럽게 물어 온다.    

         

우리 매니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게 가장 크게 다가 온 것은, 때린 놈은 모든 것이 아주 쉽구나. 그래서 자신이 불리한 과거의 일은 빨리 훌 훌 털고서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말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첫째, 우리 매니저도 일본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일본이 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도 그들은 절대 전쟁 피해국이 아니다.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과 국가들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과 전 국토에 상처를 남긴 전범국이다.

 

때린 놈은 쉽게 잊지만, 맞은 놈은 그 상처가 가슴에 새겨지는 법이다. 그래서 때린 놈은 이제부터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가자고 보채지만, 아직 상처가 남아 있는 놈은 그 상처가 치유 되기 전까지는 때린 놈의 ‘그럴 듯한 말’이 별로 그럴 듯하게 들리지 않는 법이다. 때린 놈은 전쟁을 일으킨 과오가 있으니 피해국인양 코스프레를 하며 자신들은 미국에 사과를 요구할 마음도, 그들은 원폭에 대해 당연히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해야할 일을 했다는 미국의 주장에도 감히 대꾸할 용기도 없단다. 이런 마음 가짐이면서도 겉으로는 미래를 위해 미국을 용서했다며 자신의 넓은 마음을 자랑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벌인 전쟁으로 패전국이 되어 얻게 된 불명예를 피해자의 코스프레를 통해 그저 하루 빨리 털어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왜 일본은 미국에 대해서 사과 요구 혹은 원폭과 공습의 피해 배상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일까? 일본인들의 마음이 엄청나게 넗어서 미국의 전쟁 범죄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미국 정치인들이 일본을 향해 ‘원폭은 정당했다’ 라는 막말을 할 때마다 그들은 역시나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 주고 있는 것인가? 일본의 사상자들과 유가족들은 원폭과 대공습의 상처가 모두 깨끗하게 나은 것일까? 그래서 원폭을 떨어트린 미국의 사죄 같은 것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이렇게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누구 말처럼 ‘전쟁에 패한 영주는 승리한 영주의 처분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라는 문화 때문일까? 21세기 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는 지금에도 그런 문화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말인가?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

 

그래서일까? 한국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에 일본은 짜증(?)이 날만도 하다. 그들 역시 몇 번이고 한국인들에게 사죄를 청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사태 앞에서 분명하게 마주하고 있듯이, 아베와 같은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이제까지의 양국의 그러한 노력들을 순식간에 무화(無化)로 만들고, 뻔뻔스런 발언들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상처를 또다시 헤집어 놓고 만다. 그래서 아물어 가던 그들의 상처에 기어코 소금을 뿌려댄다. 그렇게 벌어진 상처들이 다시 아물기 까지는 또 수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세살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이다.

 

그래 보인다. ‘용서’라는 것은 피해자가 ‘이제 되었다. 괜찮다. 당신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당신을 용서한다’라고 말해 줄 때까지 계속 청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코 가해자 쪽에서 ‘언제까지 우리는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인가?’라며 따지듯이 물어 올 계제의 것이 아니어 보인다.

 

둘째, 우리 매니저는 한국의 역사 공부를 ‘지나치다’라고 표현했는데, 아니다. 그 역사적 흔적들은 일제식민지 36년 동안, 전 국토가 수탈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남아있게 된 것들이다. 우리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온 몸에 새겨진 상처들이다.

 

예를 들어, 내가 태어난 금마에는 7세기 백제 무왕 때의 미륵사지석탑(국보11호)이 있다. 그런데 그 석탑의 반쪽이 시멘트로 덧대어져 있는 흉한 모습이다. 왜일까? 바로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을 분해해서 가져가려다 기단이 허물어지면서 운반을 포기하고, 그리고 그 붕괴를 막기위해 시멘트를 덧댄 것이다. 특별히 역사에 관심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석탑의 흉측한 모습에, 어릴 적 소풍 갔을 때의 담임 선생님의 자연스런 설명이었다.

 

중학교 때 수학 여행가서 알게 된 경주 석굴암의 도굴 실패의 이야기가 그렇고, 초중고를 다녔던 군산의 무수한 일본식 집들과 쌀창고들에 얽힌 실화들이 그렇다. 역사 공부를 따로 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잃어 버렸을 때에는 자신의 말과 글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름 마저도 빼앗기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한, 우리들 마음의 다짐인 것이다. 요즘 자주 듣는 말 처럼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음’을 우리는 그렇게 일제식민지를 통해서 너무도 절절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3. ‘국가 간에 체결한 조약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없었던 일로 한다면 어떻게 한국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

 

우리 매니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선거에서 승리한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가 일본과 최종적 종결을 약속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을 국민의 법 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효화 했다며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한국 정부를 믿고서 조약을 체결하겠느냐며 ‘국가 간의 약속’을 이렇게 자꾸(?) 파기할 수 있는지 묻는다.

 

더불어, 2018년 대법원의 최종 ‘일제식민지 시절 강제징용자에 일본 기업들의 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타결로 5억불,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받고서 왜 또 배상을 판결한 것인가? 그것을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경제발전에 쓴 것은 내부적인, 박정희 정부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 역시 진보 정권이 들어서니 국가 간의 약속을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매니저의 이야기를 그렇게 참이나 들었다. 이렇게 ‘한 번 따져보자’ 라고 덤비는(?) 사람과의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그이의 말에 공감하며 ‘경청’해야 할 뿐이다. 그이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그이의 속상함을 이해하며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혹여나 온갖 정보와 사실들로, 그리고 수려한 말빨로 상대방과의 논쟁에서 승리할 수는 있겠으나 그이의 마음까지는 얻지 못한다. 유창한 설명에 머리는 알아듣겠으나 한 번 틀어진 마음은 그 사실들을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이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듣고 또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한 참을 쏟아내고 나서야 내 의견을 묻는다. 요즘 한일 양국간의 문제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 보며 어쩔 수 없이 공부 중인 나로서는, 그렇게 새롭게 알게 된 정보로 우리 매니저와 대화를 이어간다.

         

먼저, 그에게 ‘왜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곧바로 “한일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을까?, 왜 15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을까?’를 물었다. 그리고 설명으로 덧붙이기를, 처음 한국에서 일본에 배상을 청구했던 금액은 우리 매니저가 ‘어마어마하다’며 고개를 흔들던 단지 5억불이 아니라 (그것도 유상 차관 2억불을 포함하고 있는) ‘30억불+알파를 배상하지 않는다면 일본과의 수교조약체결은 절대불가’ 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이미 ‘15년간’ 지속되고 있었음을 알렸다.

 

일제 식민지 36년간, 일본이 한반도 전 국토를 유린하여 수탈해 간 것이 매니저의 ‘어마어마한 금액’의 수십 수백배에 달할 것이며, 수 많은 강제징용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 그리고 학도병 징집, 게다가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무고한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과 고문이 또 그 ‘어마어마한 금액’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며, 게다가 그 모진 박해로 자신의 고국을 떠나 해외를 떠돌며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이주민들의 그것 역시 ‘어마어마한 금액’은 댈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배경을 전혀 몰랐던 매니저는, 일본 미디어에서 전하는 정보만을 접했기 때문에 ‘5억불이라는 큰 금액’을 경제적 후진국인 한국과의 관계회복이라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관대하게 지불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돈을 더 내 놓으라는 식의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동조하며 분개했단다. 그래서 당연히 진보정권의 국민 눈치보기에 대법원도 이성적인 법률에 따라 판단하기 보다는 국민의 법 감정에 좌우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했단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사법 거래’를 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났고 그래서 지금 둘 다 구속되었으니 매니저의 이런 ‘합리적 의심’에 무어라 변명할 것도 없어 보인다. 이런 부끄러운 행위에 ‘행정부와 사법부의 독립’을 외치며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의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라는 주장은 오히려 그에게 공허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양국의 ‘국민성’이 확실히 다른 것에 동의했다. 잘못된 ‘정부의 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한국인’과 대체로 ‘정부의 결정을 따르는 일본인’에 대해서 말이다.

 

막부 시대는 힘 없는 일왕이 아닌 쇼군(대장군)과 대영주 그리고 지방 영주인 사무라이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일본이기에 백성들은 지배를 받는 계층이었다. 그것이 그대로 1865년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졌고 비록 ‘신정부’(1868년)가 들어섰지만 그이들 역시 지방 영주들의(사츠마, 토사 지역 등) 가신들인 사무라이들이었다. 그들이 새로이 총리와 장관들이라는 근대식 정치 제도로 이름만 바뀌었을뿐 실제로는 봉건제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들은 ‘러일전쟁, 청일전쟁, 한일합방’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 됨으로써 일왕의 전면적인 항복 선언과 함께 미군정의 통치를 받게 된다.

 

전쟁의 패배로 미국에 의해 일왕(日王)이 한낱 평범한 인간임이 증명되었고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킴으로써 ‘미국식 민주주의’가 일본의 정치 형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쟁을 일으켰던 A급 전범들 20여명을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정치를 해 왔던 지방 실력자들, 즉 ‘영주’들이 다시 국회의 ‘중의원과 참의원’의 자리를 꿰찼고, 여전히 중앙정계에서 활약하는 중이다.

 

‘집권 자민당 70년’이 가능한 이유는 이렇듯 정치는 통치자들이 하는 영역이기에 ‘시민’이라고 불리는 지방의 ‘백성’들은 20세기가 들어서도 여전히 자신들을 보호해 줄 지역 영주들을 자신들의 대표, 즉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정계로 올려 보낸다. 아버지가 그 지방의 국회의원이면 아들이 그 뒤를 잇고, 이 아들이 물러나면 또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 일본은 이렇듯 말만 미국식 민주주의이지 실제로는 여전히 260여명의 지역 영주들이 자신들의 지역구를 다스리는 통치구조다.

 

이런 이유로, 자신들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 영주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 ‘이름 뿐’인 시민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니 옛적 막부 시절 영주가 모든 것을 정하면 그 백성들은 영주의 명(命)을 두 말 않고 따라야 한다. 영주들은 또 대영주들 혹은 쇼군이 명령한 것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결정된 국가의 결정에 어찌 한갖 백성들이 ‘No아베’를 외치며 촛불을 들수 있겠는가.

 

그러니 박정희 정권이 1965년 일본과 체결한 ‘한일수교조약’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국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단다. 그의 딸 박근혜 정권을 촛불혁명으로 심판하고,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협정’, 즉 ‘다시는 이 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 즉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합의에 대해 전 국민적인 분노가 더해져 ‘다시 제대로 하라’는 한국 국민들의 태도는 그이들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단다. 어찌 왕들끼리 약속한 것을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를 한다는 말인가! 그러니 일본인들의 눈에는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인’들이란다.

 

 

우리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며 한국인과 일본인의 다른 생각들을 많이 듣게 된다. 이렇게 차(茶)를 내려 두고 오래도록 마주 앉아 서로의 다름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그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다른 점을 통해 지혜를 모으게 된다. 비록 이 문제들에 대해 아직 뾰족한 해결책은 없지만 그래 보인다. 그러니 오래 보고,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서로가 얼굴을 자주 맞대고 대화할 수 있기를 나의 하느님 그분께 청해 본다.

 

그럼에도 또 다른 마음 한 켠에서는 당분간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도 하고 이곳에도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본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번 일들로 얼마나 속상해 하는지 그래서 아베정부와 일본사람들도 조금은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의 옹졸함에 대해 나의 하느님 그분께 용서를 청하며 그분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평화이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