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천국(하느님 나라)'은 어떤 곳일까? 본문
‘천국'은 어떤 곳일까?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 루카13,19
며칠 전 ‘일본 그리스도교 역사 공부’를 함께하는 신자분이
자신이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나눔을 해 주셨다.
‘저는 “하느님 나라”가 아이와 엄마 사이에 존재하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따뜻함, 부드러움, 안전함, 친밀감, 편안함” 등 등
엄마와 아가 사이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느낌,
이미지가 바로 저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나누어 받으면서 나도 한 가지를 보탰다.
‘하느님 나라’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르다면 조금 이상해 보인다.
하느님인 예수님이 그토록 ‘인간’이 되고 싶었던 이유,
한 번 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느껴 보고 싶으셨던
엄마아빠와의 사랑, 형제들과의 우정, 벗들과의 친교, 배움의 즐거움,
첫 사랑의 시련, 실패 했을 때의 아픔, 현실에서의 무력감, 배고픔, 갈증 등 등
‘인간 만’이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너무도 체험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하느님의 지위를 버리고 우리와 똑 같이 ‘인간’이 되신 것은 아닐까.
고로 우리가 느끼는 이런 수 많은 감정들이
바로 하느님인 예수님이 그토록 인간이 되어 느껴보고 싶었던 감정들이라면
그러니 우리가 늘 희망하고 바라는 ‘하느님 나라’가
지금의 이 세상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세상일지는 모르겠으나
예수님이 딴(?) 마음을 먹게 할 만큼 행복해도 너무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니 호기심 많고 모험심 가득한 우리네 인간들이 살기에는
그분의 나라가 조금은 따분해 보이는 동네(?)가 아닐까.
또 그러니 그분의 나라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너무 다르다면
혹시나 재미가 없지는 않을까…
아무튼 터무니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사는 이 세상과 ‘하느님 나라’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사랑과 우정, 무수한 실패와 아픔 등을 통해
이제 비로소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되었듯이(여전히 알아 가고 있듯이...)
내가 사는 세상이란,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 라 감탄하신
바로 그 ‘하느님 나라’가 아니던가.
이 땅에서 행복하면 ‘하느님 나라’에서도 행복할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럴 수 있기를 나의 하느님 그분의 도움을 청한다.
‘주님,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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