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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할아버지 신부님이 서운했던 이유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할아버지 신부님이 서운했던 이유

해피제제 2019. 10. 26. 14:06

 

할아버지 신부님이 서운했던 이유

 

 

이전에 살았던 스페인 마드리드의 칸토블랑코 공동체에서는

수도형제들이 서른 명 가까이 모여 살았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따로 시간을 내어 공동체 회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나가사키 ‘26성인기념수도원과 같은 작은 공동체에서의 회의는(?)

주로 미사 후 아침 식탁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뭐 대단한 회의가 아닌 그저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무언가 특별한 일정이 있는지 등을 형제들끼리 공유하는 정도다.

 

 

그날도 어김없이 하루 일정을 나누면서

내가 이전 같은 자리에서 공동체 원장이자 기념박물관 관장 신부님께

우리와 함께 일하는 박물관 직원들을 수도원에 초대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었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액션이 없었기에

다음 주 쯤 내 쪽에서 직원들과 따로 식사 자리를 하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원장 신부님은 난색을 표하면서

당신이 그 건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신다.

그러면서 동시에 직원들과 따로 개인적인 자리를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하신다.

그리고 그 이유로,

직원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세상에나, 팔십이 넘은 어른이, 그것도 예수회 대선배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라는 아리송한 이유로,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이유 때문에

후배 예수회원에게, 그것도 기념박물관의 부관장의 책임을 받아 파견 온 신부에게

업무 시간 외 직원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내 쪽에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였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목소리 톤을 높여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에 아차싶은 것이 있었다.

 

사비오 신부가 지금까지와 다르게 무언가를 하게 되면 내 입장이 좀 그래

 

 

그러고보니 몇 번인가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있었다.

 

매일 같이 기념박물관으로 출근하면서 스페인에서 맛들였던 인사,

¡Hola, buenos días! 라며 왁자지껄 직원들과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자주 틈 날 때 마다 박물관에 내려가 직원들에게 말을 걸곤 하는데

어느 날, 관장 신부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곳은 관람객들이 많은 곳이니 박물관 안에서는 대화를 삼가는 것이 좋겠다하신다.

 

마찬가지로 ‘26성인기념성당에서 드리는 아침 미사에서

미사 후, 역시나 목소리를 높여 신자들과 왁자지껄 인사를 나누곤 하는데

그날도 이곳은 성당 안이니 여기서 인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하신다.

 

그리고 오늘은 누구누구랑 역 근처에 가서 라멘을 먹고 왔다 라는 말과

직원들과 '순교자 역사'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했다는 말에

언제나 같은 활달한 이탈리아 사람답지 않게 침묵으로 밥만 드시고 계신다.

 

 

그렇다.

문제의 그날 아침 직원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과

사비오 신부가 지금까지와 다르게 무엇인가를 하면 내 입장이 그렇다는 말에서

선배 예수회원의 마음 속을 조금 엿본 것도 같다.

그분은 내가 그분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가는 것에

깊은 서운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곳 나가사키에 파견 받기 전까지,

신부님은 공동체와 박물관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 하셨다.

우리 나이로 팔십 셋, 이 공동체에서 가장 젊었기에(?) 모든 일들을 손수 해야 했었다.

 

매일 같이 공동체 아침 미사를 주례해야 했고,

동료 선교사인 89세 루이스 신부님과 91세 가르시아 수사님의 하루 일과를 챙겨야 했다.

게다가 일본관구 안에서 점점 적어지는 예수회원들로

이곳 나가사키 공동체와 2시간 떨어진 후쿠오카 공동체의 원장직까지 겸하고 있다.

(참고로 후쿠오카 수도원도 사정이 이곳과 비슷한 3명의 예수회원이 머물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은 후쿠오카에 있는 수도원으로도 노구의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공동체 식사가 끝나면 매끼 설거지를 손수 하신다.

 

할아버지 신부님이 아주 많이 서운하셨을 듯 싶다.

그동안 그분과 관계를 맺었던 직원들과 내가 빨리도 친해지는 것이 그렇고,

그분이 오랫동안 담당해 왔던 것들을 하나 둘 대신해 가는 것이 그렇고,

그분의 직원들과 나가사키 순례지를 정기적으로 걷는 것이 그렇고,

그분의 직원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한 것이 그렇고,

그분의 직원들과 라멘을 먹으러 가는 것이 그렇고,

그동안 없었던 주일 스페인어 미사를 시작한 것이 그렇고,

주말 출근하지 않는 주방자매님을 대신해 요리를 만드는 것이 그렇고,

그동안 필요 없었던 자동차를 구입하자는 요구가 그렇고,

예수회의 협력자들과 벗들을 자주 공동체에 초대하자는 의견이 그렇고

그렇고

그렇고

 

아마도 이런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그날 그분은 나에게 그리 뾰족하게 대했나 싶다.

참고 참다가 드디어 서운한 것들을 그런 아픈 말들로 표현했나 싶다.

 

 

잘 웃고 잘 떠드는 사람이 며칠 째 뚱한 모습에

할어버지 신부님이 자꾸 이쪽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네온다.

못된 나는, 별반 대꾸도 없이 거품이 잔뜩 묻은 접시를 자꾸 자꾸 건넨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허둥지둥 보조를 맞추려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짠해 진다.

내가 못됬긴 정말 못됬다. 

 

 

좋으신 아버지, 저희 연약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