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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침묵 피정을 하는 이유 본문

매일의 양식

침묵 피정을 하는 이유

해피제제 2020. 3. 10. 16:26

2019년 8월 예수회 일본관구를 방문한 예수회 총장 아르투르 소사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는 캉가스 신부님

 

 

피정 중에 저녁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낯익은 신부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네고 말았다.

이전의 나라면 생각지도 못할 행동이다.

피정, 대침묵 중에 대화라니....

 

야마구치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캉가스 신부님(94)이 히로시마로 연피정을 오셨다.

5-6년 만의 재회에 그날 피정, 침묵 중인 것도 잊고 손을 맞잡고

"어라?! 신부님 조금 뚱뚱해지신 거 아니에요?" 라며 농을 건다.

"진짜? 내가 뚱뚱해졌어?" 라며 신부님도 피정 중에 침묵을 깬 젊은 수도자의 짓궂은 농을 인자한 미소로 받아 주신다.

 그렇게 오랜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소를 닮은 어른 신부님과 함께 피정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신부님과 피정을 함께 하면서

하루 세 번의 식사 시간, 함께 마주 앉을 시간이 많았다. 

그러면서 또 '나이 들어 감'에 대해 한 가지 알아 들은 것이 있으니...

 

나이가 들어 생활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젊었을 때의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을 때와는 달리

말도 행동도 심지어 밥 먹는 속도도 젊은이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배려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창피하고 미안한 일이 아니다.

가족과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이제껏 모든 것을 헌신해 왔기에

그만큼 몸도 마음도 다 소진하여 약해진 것이다.

그래서 주위의 배려를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다만 그 배려들에 인자한 미소로 '고맙네' 이 한 마디면 족해 보인다. 

 

 

94세의 캉가스 신부님의 아침 식사에 이것 저것을 챙겨 드리며 서로 몇 번이나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존경과 사랑이 담긴,

노선배와 까마득한 후배가 따듯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 따듯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은, 캉가스 신부님이 고기 한 점, 야채를 내 접시 위에 놓다가 딱 눈이 마주쳤다.

'내가 당신을 지켜 보고 있어요'라고 침묵 중에 손가락 신호를 보내니

우리들을 지켜 보던 주위의 할머니 수녀님들이 입을 가리며 웃는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맛난 것을 먹이듯 캉가스 신부님이 자꾸 내게 그러신다. 

이것 저것 당신 몫을 내 접시 위에 올려 둔다. 

또 나는 '안되요. 내가 신부님만큼 뚱뚱이가 되잖아요'라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웃으며 접시를 내민다.

침묵 피정 중에 우리는 눈으로 행동으로 이렇게 잘도 대화한다.  

나의 하느님 그분께서도 우리 둘의 이정도 룰 위반쯤은 미소지으며 응원해 주시지 않을까. 

침묵 피정을 하는 이유가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고

또 그렇게 그 사랑을 벗들과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