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직접’ 만난 소감 본문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직접’ 만난 소감
그때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 루카2,25-32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문 하신 니시자카 순교지에서의 행사를 마치고
‘빅앤 야구 경기장’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나가사키 신문사 기자가
방금 전 행사에서 ‘26성인 기념 수도원’에 살고 있는 예수회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직접’ 인사를 나누었던 것을 알아 보고,
대뜸 ‘교황님을 만난 소감’을 물어 온다.
옆에 있던 선배 신부님이 “지금 서둘러 미사에 참석하러 가야 해서..” 라며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제 막 신입 기자인 듯 순순히 말 없이 물러 나는 그이를 보면서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미사 입장 시간이 빠듯해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선배 신부님과 나는 바쁘게 걸음을 놀리며
‘교황님을 직접 만난 소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 신부님은 워낙 창졸 간에 일어났던 일이라 당신을 소개하는 것도 잊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하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목소리이다.
그런 선배 신부님에게 ‘나도 그랬다’며 맞장구를 치며,
솔직히 비가 오는 와중에 핸드폰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어서,
정작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내 앞에 오셔서 손을 내밀으시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 보실 때
(그분은 ‘이게 뭐하는 물건인가?’ 라고 생각했을 듯 싶다)
나는 미처 손 내미는 것도 잊고 있다가,
‘아차!’ 싶어 허둥지둥 물기 가득한 손으로 악수를 하고 말았다.
준비 했던 말도 다 까먹고 그냥 헤벌레 해 가지고서는
스페인어로 “Bien venido!(어서 오십시오)” 라고 겨우 인사를 건넨 것이 전부다.
선배 신부님도 그렇겠지만 나는 훨씬 더 엉망으로
‘생애 첫 교황님과의 만남’을 그렇게 끝내고 말았다.
그러니 신문 기자의 ‘교황님을 직접 만난 소감’이라는 질문에
나는 마땅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선배 신부님의 기지와 촉박 했던 미사 시간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하고 싶었다.
“교황님 먼길 잘 오셨습니다.
저는 26성인 기념관에서 일하고 있는 김형욱, 한국에서 온 선교사입니다.
부디 이곳 일본과 일본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교황님의 기도 중에 북한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과의 짧은 만남은 우리에게 ‘기쁨 ’이었다.
‘26성인 기념 수도원’ 할아버지 신부수사님들은 (나를 제외하면 4 명의 평균 나이가 85세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교황님이 행사장에 오시기 1시간 전 부터 장대같은 비를 맞으며,
나에게 ‘사진 꼭 잘 찍으라’며 신신 당부를 하셨다.
내 사진은 당신이 찍어 주시겠다며
손에 익지 않은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서 열심히 연습하신다.
꼭 어린아이 같이 들뜬 모습과 개구장이 같은 행동들이
‘저분들이 80이 넘은 어른들이 맞는가’ 싶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의 만남은 나이 어린(¿) 나는 물론
나이 많은 어른 수도자들에게도 순수한 어린아이로 되돌리는 힘이 있다.
인생의 황혼길에 이제는 별로 놀랄 일도 없을 것 같은 그분들의 가슴을
두근거리며 뛰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니 우산도 없이(경호 상의 이유로 우산 반입이 금지 되었다)
비옷 하나로 장대비를 맞으며 1시간을 넘게 기다리면서도
각자 교황님께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하고, 기도를 올리며
또 어떤 이는 ‘비디오가 좋을까, 사진이 나을까’ 라며 연습 같은 것을 해가며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즐거워 하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나 역시도 체면 따위 다 잊고
선배 예수회원들이 교황님과 인사 하는 장면을 연신 핸드폰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정작 그분이 내 앞에 오셔서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엉겹결에 손에 든 핸드폰을 들이 밀었으니 말을 해 무엇하랴.
그분은 나 처럼 딱딱한 수도자도 그렇게 허둥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1989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일본을 방문하신 적이 있다.
그때는 아르헨티나의 예수회 신학생들의 양성장을 맡고 계셨고
일본으로 파견한 아르헨티나 신학생들을 만나러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안토니오 가르시아 수사님이
당시 호르헤 베르골리오 양성장 신부님의 안내를 맡았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교황님이 나가사키 니시자카 순교지를 애써 찾는 이유 중 한 가지가
당신의 오랜 지인을 만나고픈 사정도 있다고 들었다.
며칠 전, 91세의 가르시아 할아버지 수사님이 아침 식탁 자리에서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만나는 소감에 대해서
‘시므온의 찬가’의 성서 구절로 들려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셨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는 ‘기쁨’이고,
또 누구에게는 ‘편안히 눈 감을 수 있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해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도우심과 지비를 청해 본다.
'세상에게 말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바'를 손빨래 하다 (2) | 2019.12.14 |
---|---|
절망 중에 있을 때 (0) | 2019.11.25 |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나가사키 ‘니시자카 공원'을 방문하는가? (0) | 2019.11.08 |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는 것들 (0) | 2019.11.06 |
'천국(하느님 나라)'은 어떤 곳일까? (0) | 2019.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