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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알바'를 손빨래 하다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알바'를 손빨래 하다

해피제제 2019. 12. 14. 11:41

나가사키 빅앤 야구경기장 프란치스코 교황님 미사를 검색하다가 사제단 입장시 조그맣게 찍힌 내 모습에... 

 

알바를 손빨래 해 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나가사키 ‘Big N’ 야구경기장에서 미사를 집전 하셨다. 3만명이 넘는 신자들이 교황님 주례의 미사에 참례하여 한 목소리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찬송을 하는 모습은 그이들 스스로에게도 기쁨이었지만 나에게도 놀라움이었다.

 

일본에서 가톨릭은 0.4%의 언제나 소수로 늘 조용한 그리고 소박한 모습이었기에 이런 열정적인 찬송과 환호 그리고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강렬한 공동체성은 일본 교회의 현실에 둘러싸여 조용히살아가는 내게도 가슴 뜨거움이었다. 여기 저기 눈물을 흘리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언제 이런 뜨거운 감동을 맛 보았는지 그이들의 기쁨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게 열렬히 미사를 마치고 순백의 제의를 정리하는데, ‘아뿔사오전에 왕창 내린 비로 인해 운동장 상태가 엉망이었는지 알바(alba, 사제가 미사를 봉헌할 때 착용하는 장백의) 끝단이 전부 홍건히 젖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열정적으로 교황님 사진을 찍고 환호를 보내고 서거나 앉으면서 경건하게 미사를 올리면서 알바가 바닥에 끌려 흙투성이가 되는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나 보다. 그런 장엄한 미사의 감동 뒤에 새하얀 알바의 끝단은 눈에 띄게 더러워져 당장 세탁하지 않으면 얼룩이 깊게 배일 듯 싶어 수도원에 돌아오자 마자 세탁실로 향했다.

 

근데 또 아뿔사’, 이 새하얀 알바를 어떻게 세탁을 해야 하는지 내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제의는 미사 전례 때만 착용하기에 쉽게 더러워질리가 없었고 그래서 내 손으로 세탁할리도 없었다. 그리고 서품 후에 본당에서 보좌로 있었기에 줄곧 제의방 봉사자 신자분들이 관리를 해 주셨기에 나는 늘 순백의, 깨끗하게 다려진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했다. 또 수도원으로 복귀한 후에도 미사 주례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으니 딱히 더러워질리도 없고 혹여 그렇더라도 수도원에 봉사 오시는 신자분들이나 제의방 담당 수사님들이 정기적으로 드라이 크리닝을 맡기니 역시나 나는 내가 입는 제의를 세탁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들은 풍월이 있어서 제의 같은 섬세한(?) 섬유는 1)드라이 크리닝을 맡기거나, 2) 세탁기의 속옷 모드로 돌리거나, 3) 온수에 세제를 풀고 30분 정도 불린 후, 4) 정성스럽게 손빨래를 해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들은 풍월에 옷이며 걸레며 온갖 것을 빨아대는 낡은 세탁기 대신 차라리 손빨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알바를 손빨래 하면서 나는 방금 전의 망설임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나는 많은 신자분들의 은혜를 입고 살고 있구나. 수도원 사제가 자신의 제의를 한 번도 빨아 본 적이 없구나. 늘 그렇게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신들의 것 보다 더 귀하게 사제들의 제의를 정성껏 손질해 주신 신자분들이 계셨구나. 앞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제의를 입을 때의 기도에 더해 제의방 봉사자분들을 위해서도 감사 기도 한 줄 더해야 하겠구나싶었다.

 

수도원 소유의 ‘26성인 기념성당은 딱히 제의방 봉사자도 없고, 성당 관리 수사님도 91세의 연로한 노인이라 눈에 띄지 않는 제의에까지 관심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손수 해야 하는 이곳 나가사키 수도원 공동체에서 나는 요즘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또 허락해 주신 이 시간들에 나는 부지런한 학생이 되어야 하겠다.

 

교사이신 아빠 하느님, 제가 더 많은 것들을 배워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