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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난 네가 수련원 시절에 했던 일을 기억한다 바리사이: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러 알로이시오 신학원 공동체에 머물렀다. 삶 터가 외국이다보니 한국에 들를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2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갓 서원을 한 맑은 수사님도 있고 철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에 아침부터 부시시한 모습으로 머리를 부여 잡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수사님도 있다. 10여년 전, 내 모습도 그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마냥 그 모습들이 안쓰럽고 또 귀엽다. 연학 수사님들의 앞으로 긴 배움의 시간들이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더 성장하는 시간이기를 내 기도에 더해 본다. 수..

나는 ‘평화’가 아닌 ‘분열’을 주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은 ‘평화예식’ 시간에 서로를 향해 ‘평화를 빕니다’라며 한 목소리로 주님의 평화를 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예수님이 ‘평화의 사도’임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복음 말씀을 듣게 되면 퍽이나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니… 베드로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은 ‘살아 있는 하느님’이다. ‘메시아’이며 우리의 ‘구원자’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 연약한 신앙인들의 이 세상살이 모델과 기준이 된다. 그분의 짧은 공생활에서 보여 주신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

수호 천사-“누가 나를 보호합니까?”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어느 낯선 곳에 머물게 되었고 그곳의 주인은 나를 정중히 맞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었고 주인은 나에게 서둘러 떠나 달라고 그런다. 해서 나는 그에게 ‘나를 도와 줄 사람이 누굽니까?’ 라고 물었는데 때 마침 핸드폰 알람이 울리며 눈을 뜨게 되었다. 잠을 막 깨어 비몽사몽 간에 나는 계속 해서 물었다. “누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멀리서 들려 온다 ‘나의 하느님, 그분의 천사가!’ 오늘 공동체 강론을 하기 위해 전 날 잠 자리에 들기 전 읽었던 복음말씀이 간 밤 꿈 자리에까지 따라 들어 왔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잠결에도 ‘누가 나를 보호해 줍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나 싶다. 그래 보인다..

하느님을 닮고 싶은 선한 마음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한 눈 팔지 않고 가족을 위해, 또 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성실히 살아왔지만 그래도 어떤 일이 생기면 늘 내 잘못이고 내 탓이다. 아마도 하느님 그분 보시기에 ‘더 괜찮은 내 모습,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그분을 닮고 싶은’ 선한 마음 때문이리라. 그러니 늘 부족하고 죄 투성이 내 모습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닌가! 그래 보인다. 아무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막 나가더라도 하느님을 딱 빼다 박은 우리들은 그분 선함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니 늘 실수투성이오 ‘죄 많은’ 우리 모습이지만 그래도 ‘더 괜찮은 그분 모습’으로 나아가도록 창조하신 그분을 신뢰하며 오늘 베드로 사도의..

떨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 예레 1,17 강론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 내 가슴은 늘 쿵쾅거린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것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닌가 보다. 한 번 새가슴은 영원한 새가슴이다. 그래서 대중 앞에 섰을 때 늘 자수(?)를 하곤 한다. ‘내가 지금 떨고 있다’고, ‘너무 떨려서 심장 소리가 다 들릴 정도’라고… 이렇게 이실직고를 하고 나면 어느새 쿵쾅 거리던 심장도 고요해지고 떨고 있던 손발도 제자리를 찾는다. 오늘 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을 빌려 보면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이런 떨림이 일어나..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유 성전세 징수원: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베드로: “내십니다.” 예수님: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베드로: “남들에게서입니다.” 예수님: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 받는 것이다.” 4세기 초대 교회에서는 펠라기우스 360-430와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논쟁으로 인해 결국 펠라기우스는 이단으로 판명되어 교회의 정죄를 받았다.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인간의 의지는 하느님의 창조로 그 자체로 완전하기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아담과 이브의..

예수님이 빵을 먹인 이들은 누구일까? ‘오병이어’,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성경 말씀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두고 갑론을박 논란을 하고 있지만 신앙의 문제는 과학적 사실을 다투는 영역이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오천 명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분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셨고 결과적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도 건장한 성인 남자 오천 명이 만족하게 먹고도 남은 ‘자투리 음식’이 ‘열 두 광주리’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먹고, 함께 했던 경험으로 예수를 믿고 그분을 따랐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팩트’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하느님이 오늘 밤 그대를 부르신다면... 지난 밤 비행기를 타고 콩고로 떠난 두 명의 아프리카 출신의 수사님들이 오늘 아침 미사에 나타나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사연인 즉슨, 2일 오전 0시 5분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해당 ‘2일’ 0시 5분 비행기에 맞추어 공항에 나갔기 때문이다. 하루 앞서 1일 오후 10시쯤에 공항에 도착해서 날이 바뀌는 2일 오전 0시 5분 비행기에 탑승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고국 방문 기회를 수사님들은 그렇게 어이 없이 놓쳐 버렸다. 다행히 이틀 후 다른 비행기 편으로 출발 하였으니 수사님들의 이 에피소드는 앞으로 길이 길이 수도원 내에서 웃음으로 회자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늘 이렇게 비싼 값을 치르면서 늘 무엇인가를 배우곤 한다. 그래 보인다. 모두가 한 바탕 웃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