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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까미노는 모험가 시인 신앙인 그리고 어린이로 만든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나는 ‘모험가’가 된다. 모르는 길을 두근대는 가슴으로 찾아 나선다. 나는 ‘시인’이 된다. 눈 앞의 모든 것에 감탄하게 된다. 나는 ‘신앙인’이 된다. 나의 하느님 그분을 찬미하게 된다. 나는 ‘어린이’가 된다. 이 모든 세상에 호기심 가득하다.

된장국 같이 구수한 똥 냄새 까미노 길은 온통 동물의 똥냄새로 가득 차 있다. 방금 누운 똥, 며칠 지난 똥, 마른 똥, 말라가는 똥, 어마무시 큰 똥, 작은 똥, 보통인 똥… 아무튼 사람이 다니고 동물들이 함께 다니기에 이상하게 사람 똥만 없지 모든 까미노 길이 동물들의 똥 천지다. 며칠을 그 분뇨 냄새를 맡고 다니다 보면 코가 그 향기에 익숙해 진다. 그리고 루고와 같은 깔끔한 대도시에 들어 가고 다시 그곳을 떠나면서 그 익숙한 분뇨 냄새를 맡게 될 때는 마치 구수한 된장 냄새를 맡듯 친근함이 몰려 올 정도다. 우리 순례자 중 누군가 그리 말한다. 아마도 우리 머리카락, 우리 옷, 우리 신발, 우리 온 몸 곳곳에 이미 이 똥 냄새가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까미노 모든 길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니..

드라큘라 백작과 햇빛 여명이 밝아 오고 해가 솟을 기세다. 영화의 드라큘라도 아니면서 그 빛을 피해 달리듯 까미노를 한다. 쁘리미티보 루트는 햇볕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비를 맞고 걸었던 것이 이틀, 안개낀 날이 사흘, 해가 나지 않은 구름 많은 날이 또 사흘.. 그런데 쁘리미티보 루트를 벗어나자 제대로 된 사막의 열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산티아고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살을 태울 듯한 열기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은 그 햇살이 나를 태우기 전, 목적지에 도착 할 기세로 또 이렇게 발걸음을 빨리 해 본다. 드라큘라 백작도 아니면서 뜨거운 해를 피해 그림자 속에 숨어 본다.

루터의 교회의 ‘면죄부 판매 비난’을 연상시키는 산티아고의 ‘순례 증명서’ 판매 ‘산티아고 순례’를 완주했다는 ‘증명서’를 받기 위해 산티아고 관공서 앞에 줄을 섰다. 이른 아침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순례자들은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다. 아마도 하루에도 수백명이 이곳에서 증명서를 발급 받는다는 소문 때문이리라… 오전 8시, 문이 열리면서 생기 가득한 순례자들은 하나 둘 증명서를 받아 들고 기뻐한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서로 포옹을 하기도, 자국의 국기를 꺼내어 흔들기도 하면서… 그이들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기에 나도 덩달아 설레어 기다린다. 그런데 대기줄이 줄어 들기를 기다리면서 옆에 게시된 공지를 읽다가 살짝 마음이 그랬다. ‘까미노 순례’를 했다는 증명서는 당연히(?) 무료이지만..

인생의 다음 번 ‘노란 화살표’ 산티아고가 목적지였다. 그러나 산티아고를 지나 다시 ‘노란색 화살표’와 방향을 나타내는 ‘조개껍데기’를 찾는다. 새롭게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다. 인생은, 삶은, 한 목적지에 다다랐다고 끝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또 다른 노란 화살표를 쫓아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우리네 삶은 이 땅을 떠나 그분의 나라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계속되는 까미노 여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데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네 삶에서 이 방향이 옳은지, 바른지, 정의로운지, 선한지, 잘 가고 있는지… 그런 확실성을 줄 수 있는 ‘노란 화살표’ 말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이는 이 세상에서, 마치 ‘영..

저 마다의 까미노를 걷는 사연 몬테 데 고쏘 알베르게에서 안젤라(한국인) 자매님을 만났다. ‘프랑스 루트’를 걸어 오셨단다. 나이 지긋한 분이 장장 40일을 걸어 산티아고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까지 오신 것이다. 이분에게는 또 무슨 사연이 있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었을테고, 그래서 이렇게 모험을 떠나 오셨으리라. 옆 동네도 아닌, 먼 곳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말이다. 일행이 있었지만 각자 걷기로 했다고 한다. 그이들 사이에서는 또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잠깐의 인연이지만 나의 하느님 그분의 축복을 빌어 본다. 어떤 인연을 붙잡아 두고 싶지만 또 그것은 억지로움 같아 그냥 흘러 가도록 놓아 두어야 할 때도 있다. 인연이 닿고 그분이 원하신다면 또 언젠가 그 연이 이어지겠다 싶다. 이제는 마음이..

인생의 또 다른 까미노 순례 길 간 밤 잠 중에 누군가의 고단한 코골이에 또 다시 깼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오른 발가락이 아파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 중에 산티아고가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산티아고를 지나 Muxia까지 가기로 하고 파우와 깊은 포옹을 하고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인연 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또 이렇게 만나고 헤어질 인연이다. 그러니 이 인연을 억지로 가져갈 필요는 없겠다 싶다. 또 어느 길 위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또 그렇게 반갑게 해후 할 수 있기를… 그이의 여정에 나의 하느님 그분의 축복을 빈다.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와서, 한 목적지에 다다랗다고 다음 여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시 다른 목적지가 생기고 또 다음 길 ..

‘원판 불변의 법칙’ 다른 루트와 합쳐진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졌다 보다. Melide에서는 까미노 노르테와 합쳐지고 Arzúa에서는 까미노 프랑스와 만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의 몇 배나 되는 이들이 길 위를 걷는 모습에 오늘 밤 잠 잘 곳을 걱정했나 보다. 각 마을 마다 값이 싼 시립 알베르게는 한 곳 뿐이기에 순례자들로 먼저 채워지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면 가격이 두 배나 되는 사립 알베르게로 가야 한다. 과거에 그랬던 것 처럼, 내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누구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 처럼, 그이들을 경쟁자로 여기며 하나 둘 제쳐 가며 전투적으로 살았던 모습 처럼, 까미노 순례자가 되어서도 지금 하나 둘 그이들을 서둘러 제치고 있다. 결국 그이들 보다도 이르게 시립 알베르게에 도착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