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그냥 떠나라’ – 산티아고 순례길 본문
‘그냥 떠나라’ – 산티아고 순례길
한 때는 ‘완벽주의자’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모든 일에 철저히 대비하며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나사 풀린 철인 28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구멍 숭 숭 뚫린 모습이다. 과거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그 ‘차도남’이 맞냐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십 수년 수도생활을 하면서 얼마쯤은 변하기도 변한것일까.
며칠 전 새로운 소임지로 파견을 받았다. ‘나가사키 26聖人 기념관’과 ‘순례자의 집’이 그것이다. ‘기념관’이야 몇 십년 전부터 순교 성인들의 유물들을 전시해 왔으니 기념관 프로그램에 따라서 운영을 하면 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건립되는 ‘순례자의 집’이다. 수도회 장상들은 이전 ‘나가사키 피정 센터’를 ‘순례자의 집’으로 바꾸어 운영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피정센터로 피정을 하러 오는 이들이 적어져서 더 이상 운영이 곤란하단다. 대신에 순례를 오는 이들, 특히 한국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해 새롭게 ‘순례자의 집’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내 장상인 일본 예수회 관구장 신부님은 한국인인 나에게 이곳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교회사’ 공부를 하게 하고, 또 ‘순례자의 집’으로까지 파견을 명령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순례자의 집(알베르게)’이 널리고 널린 이곳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걸어 볼 계획이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구멍 숭숭 뚫린 너덜 너덜 철인 28호’가 된 나는, 이번 순례의 목표를 딱 하나로 정했다. 바로 산티아고 길 위의 ‘순례자의 집’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코스로 2주간의 ‘카미노 쁘리미티보 Camino Primitivo’를 선택했다. 800킬로미터의 ‘프랑스 길’이 아닌 ‘오비에도’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까지의 320킬로정도의 짧은(?) 코스다. 그리고 2주간 매일 잠 자리는 각각의 ‘순례자의 집’에서 머무는 것으로 일정을 세웠다. 이쪽 출발하는 ‘순례자의 집’에서 다음 번 머물 ‘순례자의 집’ 까지의 일정으로 말이다.
같은 공동체에 살고 있는 동료 신부님이 이번 여름방학 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묻기에 일본으로 돌아가게 됐고, 그래서 가기 전에 카미노를 계획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눈을 반짝이며 당신도 그 길을 걸어 보았단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카미노 자료들을 보내 주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밥을 먹는 자리든 아니면 공동체 모임의 자리에서든 얼굴을 마주할 때 마다 자신이 카미노에서 찍은 사진들과 체험들을 나누어 준다. 그러면서 잊지말고 준비해야 할 것들의 목록까지 꼼꼼하게 챙겨 준다.
동료 신부님의 조언대로 그렇게 지도를 출력하고, 순례자의 집들의 전화 번호를 적어두고, 작은 사진기, 비옷, 조개껍데기, 순례 증명서, 미사를 드릴 때 필요한 제병들까지 리스트에 추가하다 보니 점 점 준비할 목록들이 장난이 아니게 늘어났다. 처음에는 딱 이쪽과 저쪽의 ‘순례자의 집’, 알베르게의 이름만 알아 두었고 그래서 그냥 대충 대충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떠날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하나 둘 리스트를 작성 하고 나니, 이건 뭐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져 버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올라 오는 생각이,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순례를 하려는 것인가?’ 라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 올라 왔다.
그러고 보니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 성인의 무덤까지 돈이나 먹을 것을 지니지 않고 밥도 얻어 먹고, 잠도 얻어 자 가며 빈 몸으로 걷던 고행의 길이었다. 다음 ‘순례자의 집’이 어디쯤인지 목적지를 정해 두고 떠나는 것이 아닌, 팍팍하고 건조한 사막 길을 걸으며 들짐승과 강도들과도 맞딱트릴 수 있는 조금은 위험하기까지 한 길이었다. 지금의 친절한 지도나 스마트 앱에서처럼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표시되어 있지도 않았고, 혹여 한 밤 중이라도 머리 기댈 곳을 찾지 못하면 그 밤 길을 또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그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들짐승을 물리칠(?) 지팡이와 거친 외투 한 벌 걸치고 떠나는, 그래서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지하며 걷던 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길을 ‘하루 20킬로미터 정도, 다음 번 ‘순례자의 집’까지, 하루 예산은 30유로,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은 어디쯤, 미사는 마을 어느 성당에서…’ 등 등 순례를 떠나기도 전에 준비할 목록에 눈이 어질어질 할 정도로 이것 저것들을 꾸겨 넣고 있지 않은가.
갑자기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귀차니즘인지 아니면 하느님 그분의 도움으로 당신께 조금은 의지할 수 있게 되었는지, ‘완벽주의자’가 ‘나사 풀린 철인 28호’가 된 것도 같았는데 도로 제자리로 이것저것 꼼꼼히 챙기는 내 자신을 보면서 ‘그냥 떠나자’ 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빈 몸으로 떠나라’ 라고 그런다. 하느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떠나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무슨 30일 코스 ‘극한 체험 프로그램’ 혹은 ‘익스트림 스포츠’와 같이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너도 나도 잘 짜여진 계획과 장비들로 매년 무수한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고 여기저기서 확인 도장 가득한 ‘순례 증명서’를 자랑처럼 걸어 놓고 싶은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다행히 처음부터 ‘증명서’나 ‘조개껍데기’ 같은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나인지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란 마음에 조금은 안심스런 마음이다.
그러고 보니 수련 수사 시절 마지막 실습으로 2006년 12월, 지난 밤부터 눈이 펑 펑 내리던 그날에 동기 일곱이 각자 무전 순례를 떠났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정말이지 일주일간 돈 한 푼 없이, 먹을 것도 잠자리도 구걸해 가면서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지해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분께만 기대어 시작한 수도생활이 지금은 순례를 떠나기 위해 준비한 리스트처럼 이것저것 가진 것이 많아져 그것들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잠깐 머물러 본다. 그리고 동료 신부님이 고맙게 챙겨준 리스트들을 접어 놓으며 이번에는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나서 보고자 한다. 그냥 그분을 믿고 발 길 닿는대로 떠나 보려 한다. 내 가진 힘을 좀 빼 보려 한다.
그럴 수 있기를 나의 하느님 그분께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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