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일상에서 ‘신앙’을 산다는 것 – ‘축구유학’을 떠나 온 가족들 본문
일상에서 ‘신앙’을 산다는 것 – ‘축구유학’을 떠나 온 가족들
오랜만에 마드리드 한인 공동체에 미사를 주례한 후 신자분들과 다과를 함께 나누었다. 그런 중에 눈에 익은 가족이 있어 인사를 건넸더니 나를 처음 본다는 눈빛이다. 한 명도 아니고 가족 전체가 그렇다.
해서 ‘우리의 만남’을 설명했더니 그제서야 ‘아!’라는 탄식과 함께 “그때는 로만칼라를 하지 않아서…” 라며 말끝을 흐리신다. 그분은 알아챘을까. 이 말이 나를 두 번 죽이는(?) 말이었다는 것을...
이곳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아빌라’에 한국 가르멜회 소속이 신부님들 네 분이 살고 계신다. ‘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로 대표되는 가르멜 성인들의 영성을 공부하러 오셨다. 그런데 그 중 한 분 신부님이 가끔 고해성사를 위해 마드리드에 나오시는데, 그날 스치듯이 그 신부님 사촌 여동생 가족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물론 ‘평!상!복!’ 차림으로 말이다.
‘나는 한 눈에 알아보았는데’ 라는 마음에 살짝 장난끼가 동해 그분에게 “그냥 보아서는 사제란 걸 모르겠단 말이죠? 꼭 로만칼라를 해야만 신부인 줄 알겠단 말이죠” 라며 짓궃게 말을 건넸다. 그분은 연신 ‘아니’라며, 그때는 내가 평상복이었고 스치듯이 인사만 나누었기 때문에 자세히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다며 아주 난처해 하신다.
이 가족은 중학교 2학년 자녀를 위해 ‘축구 유학’을 와 있는 상태다. 아이가 축구를 좋아하고 잘 한다는 주변의 권유에 아빠를 제외한 가족이 스페인에서 2년간 머물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사촌 여동생 가족의 결단에 놀라움과 대견함을 표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약간의 염려하는 마음도 당연하듯 내비친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많은 한국인 축구 유학생들이 스페인 유소년 클럽을 찾고 있는 현실이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유학을 와 기숙사에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이렇게 가족이 함께 오기도 한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원체 클럽 축구가 유명하고, 그런 이유로 유소년 축구 육성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에 유럽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그것도 자기 나라에서 난다긴다하는 유망주들 수천명이 축구 유학을 와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미 수백명이 이들 틈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신부님의 여동생 가족에 대한 염려도 이해가 된다.
이 소년이 스페인 1부 리그 팀들에 소속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하는 엄청난 경쟁의 자리이다. 난다긴다 하는 세계 곳곳의 축구 유학생들 중에 과연 누구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로셀로나’ 같은 1부 리그 클럽 팀에 속해 있을 수 있겠는가! 아직 한국인 선수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그런 어려움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소년 축구 유학생들 중에는 2부, 3부, 4부 리그 클럽 팀에 소속되는 것이 꿈인 친구들도 많다. 그래서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경기에도 잘 나오지도 않고, 가끔 교체 선수로만 뛰고 있어서 별로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되지 않는 ‘발렌시아’의 ‘이강인 선수’가, 이미 축구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백승호, 이승우 선수들과 더불어 감히 눈을 마주할 수 없는 곳에 올라 선, 그들의 ‘꿈’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런 수천 수만명의 축구 유망주들의 경쟁에 신부님의 중학생 조카가 합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가족들이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누구나 ‘이강인 선수’ 같은 축구 선수로 뽑힐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소년의 엄마아빠는 또 얼마나 많은 걱정과 근심 그리고 부정적인 말들에 마음을 졸였을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아빠가 어린 소년의 결심을 무시하지 않고, 그 소년의 행복을 빌어 주며 그 꿈을 함께 꾸기를 응원하고 있으니 얼마나 굳건한 믿음과 신뢰가 그들 안에 자리잡고 있어야 이러한 결정이 가능한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가족의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수많은 고뇌의 시간들과 그리고 앞으로의 기다림은 자녀에 대한 신뢰의 크기다. 마치 신앙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 소년이 자신의 꿈에 가닿기를 응원하면서도 혹여 그러지 못할지라도 소년은 엄마아빠의 사랑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인했으리라. 그래서 이후 어떤 어려움이 앞에 놓여도 이 작은(?) 경험이 그 소년으로 하여금 다시 앞을 향하게 하리라.
‘로만칼라’를 해야만 사제임을 알아차리게 하는 나 보다도, 가르멜회 신부님 여동생 가족들은 일상의 삶에서 하느님의 신앙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가장 작은 소년의 꿈에도 귀를 기울여 주고, 또 수 많은 어려움과 주위의 온갖 부정한 말들 속에서도 그이들이 함께 대화하고 그 꿈을 응원하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뚜벅 뚜벅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 가족 안에 깊게 뿌리내린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그것을 매일같이 살아내는 가족들의 사랑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 가족 ‘모두의 꿈’이 ‘그분의 뜻’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내 기도에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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