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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Camino Primitivo 3: Espina > Borres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Camino Primitivo 3: Espina > Borres

해피제제 2019. 8. 1. 06:14

 

셋째날은 Espina에서 Borres로 향하는 여정이다. 

전날부터 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까미노 시작부터 한기가 느껴졌고 길도 엉망진창이었다.

까미노 쁘리미티보가 대부분 산길이라 오르내리막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이른 아침 알베르게를 나서면서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는 묵주기도를 매일 받치고 있는데

오늘은 어머니의 손길이 더욱 간절하다.

 

# 단상

이제껏 살아 오면서 '내가 계획했던 대로' 내 삶을 살았던 적이 얼마나 될까.

거의 모두 예기치 않은 변수들로 인해 그 계획을 수정하고 그래서 처음과는 다른 결과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치 '삶이란 바로 그런 거야'라고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까미노의 여정도 그랬다.

한 여름 까미노 순례라 두꺼운 옷은 아에 처음부터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냥 햇볕을 가려줄 여름용 긴팔과 긴바지 한벌이 전부였다. 

 

그런데 왠걸!

처음 오비에도 기차역에 내렸을 때부터 갑자기 들이치는 한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역 앞 오비에도 시내로 나섰을 때 반팔옷과 여름 슬리퍼를 신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모든 두툼한 겨울 잠바에 목폴라 게다가 목도리까지 하고 시내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6월말 스페인 북부 지방은 아직 한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아직은 겨울잠바와 목도리를 해야한다. 

나처럼 뭣도 모르고 까미노 땡볕 아래 순례만을 생각한다면 이런 우를 범하게 된다.

그날의 오비에도에서 맨발이 그토록 시려웠던 기억은 그래서 다시 한 번

'삶은 내가 계획했던 대로는 흐르지 않는다' 라는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듯 했다.

 

게다가 그후 이어지는 까미노에서 나는 그 진리를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하루 걸어야 하는 거리와 그날 머물러야겠다고 계획해 둔 알베르게에서

거의 그대로 걷거나 머물러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첫날 까미노에서 처럼 그날 머물어야 하는 Grado의 알베르게를 지나쳐 San Juan Villapañada에서 머문 이후로

모든 걸어야 되는 거리가 조정 되면서 계획했던 알베르게 역시 모두 변경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역시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처음의 계획에 없던 상황에 재빨리 대응하면서

그래도 목적지를 잊지 않는다면 큰 틀에서의 인생 계획은 또 유효하다 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 처음 계획을 잊지 않는다면 

좌충우돌 하면서도 내 큰 그림에 다다르고 있을 것이라는 또 다른 진리이다.

 

그러니 처음 계획이 틀어졌다고 낙담할 것도 없다.

그러니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에 깊은 성찰을 더하고 주위의 지혜들을 빌려 적절히 대응해 가면 될 일이다.

그러니 처음 계획했던 목표를 잊지만 않고 끝까지 간직한다면 언젠가 그 꿈에 다다라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또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래 보인다.

 

-결국 나는 오비에도에서 긴팔 따듯한 상의를 구입해야 했다. 

늘 그렇듯 오늘도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삶의 지혜를 얻어 듣는다.  

 

 

 

 

 

 

 

 

 

 

 

 

 

 

 

 

세상 어느 곳이든 농부는 늘 이렇게 이른 아침을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