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마음에게 말걸기 (134)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행사에 쓸 명찰 디자인 건으로 직원들 의견이 분분했다. 누구는 'ihs' 로고가 좋다. 누구는 '명조고딕체'가 좋다. 누구는 'staff'가 로고 위에 있으면 좋겠다 등 등 센터 소장님부터 자원봉사자까지 제 각각 의견을 나누고 통합해가면서 아침부터 사무실이 복작복작했다. 결론은 '내 마음에 들지 않은' '목각체'로 위의 사진과 같이 결정됐다. 문제는 그 후에 불거졌다. 나의 이 ‘마음에 들지 않은 마음 상태’를 감지한 누군가가 태클(?)을 걸어온 것이다. "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게 하세요"라는 말이 그분의 어떤 곳을 건들었다 싶다. 한참을 옥신각신 해명과 반박과 침묵으로 똑 복작복작했다. 우선 내 의견대로 디자인이 결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첫째, 나의 감정 상태는 서운함이나 이해 받지 못함에 대한..
'비겁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더 비겁한 것은 주위 사람들을 다 자기 편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그런데 정작 사랑 받고 싶은 사람에게서는 그러지 못해. 그 사람은 이 사람의 비겁함을 알아차리거든” 이런 이야기를 당사자가 면전에서 그것도 삼자와 화자의 대화 중에 듣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화가 날까? 아니면 담담해질까? 내 경우는 순간 어리둥절함이 밀려왔다. 잠시 후, 화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가 했고, 나를 지칭해서 그렇다하니 조금은 부끄러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부끄러움도 잠시, ‘근데 내가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둘만큼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았나?’하며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화자가 나에 대해 하는 말들 중에 어떤 것은 맞기도 하겠고, 또 어떤 것은 ‘글세...’라며 머리를 갸웃거리게 하고,..
딱 하루만 남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딱 하루만 남의 마음에 귀를 기울였으면 딱 하루만 남의 손을 잡아 주었으면 딱 하루만 남의 눈물을 닦아 주었으면 딱 하루만 남의 손을 잡고 함께 눈물 흘렸으면 딱 하루만 남의 넉넉한 품이 되어 주었으면 딱 하루만 나보다 남을 더 생각했으면 딱 하루만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딱 하루만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으면 딱 하루만 깊은 사랑에 몸 둘 바를 몰랐으면 딱 하루만 나의 약함을 마주할 수 있다면 딱 하루만 펑 펑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딱 하루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행했으면 딱 하루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면 딱 하루만... 딱 하루만....
"수사님들 요즘 어떤 힘으로 사십니까?" 아침 미사 때 강론을 시작하면서 신부님이 물어온다. 난데 없는 질문에 질문을 받은 수사님이 화들짝 눈을 치켜뜬다. 똥그랗게 뜬 눈에는 '왜 접니까?'라는 억울함이 가득하다. 그러면서 "저 말고 형욱 수사한테 먼저 물으시면 안되겠습니까?"한다.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나한테 질문이 돌려졌다. 딱 3초간 창 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설레임" 나를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설레임 나를 그이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드는 사도직에서 만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설레임 나를 웃고, 울게 만드는 봉사자들을 향한 설레임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레임 나를 더 나은 나로 여겨지게 만드는 공동체 형제들을 향한 설레임 이 모든 게 가능하게 만..
태국 치앙마이/ 불교명상센터 앞 마당에 놓인 꽃 2008년 로마에서 개최된 예수회 35차 총회에서는 예수회원들에게 우리시대의 ‘최전선’을 향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에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이하 ‘이웃살이’)는 ‘현대의 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우리가 다가가야 할 ‘최전선’으로 규정하고 사도직을 수행한다. “너의 땅에 함께 사는 외국인을 괴롭히지 말라. 너에게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을 네 나라 사람처럼 대접하고 네 몸처럼 아껴라.” (레위 19,33-34) 성서의 이 말씀이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이주노동자들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함께 나누는 것이 이웃살이의 사명이다. 그리..
캄보디아 반티엡프리업 나무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이재상 수사님과 임종진 사진작가 그리고 그분의 조카 지난 6월 30일에 예수회에서는 5명의 형제들이 서품을 받았다.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10년간의 양성기간을 거쳐오면서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 길, 앞으로의 여정 역시 당신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해본다. 올 해 서품을 받은 다섯 신부님들과는 나름대로 인연이 깊다. 2001년 서강대신학대학원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던 나는 2002년 수련원에서 갓 서원을 마치고 신학대학원 철학과로 입학한 신부님들의 1년 선배였다. 동시에 대학원 원우회 총무까지 맡았던 터에 주중사도직과 학업 그리고 수도회 공동체 생활로 바쁘게 움직였던 신부님들에게 ‘원우회 활동에 일절 도움이 안된다’며 구박 아닌 구박을 도맡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