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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일석삼조 기도문 까미노 순례 길 위에서 '기도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사제가 왜 기도문을 이제서야?' 라며 의아해 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스페인어로 된 기도문입니다. 그동안 입에 잘 붙지 않아 여전히 미사를 드릴 때 뭉개 듯 기도문을 읊조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걷는 중에 잠시 오르막길 같이 없던 힘도 필요한 ‘곳’을 만나면 자연스레 입술에 해당 기도문을 올려 봅니다. 무아지경 중에 그 힘든 고개를 넘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입니다. 기도문을 외울 수도 있고, 또 고개도 넘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하느님 그분을 다시 한 번 만나 뵐 수 있으니 그러고 보니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입니다. 이렇듯 까미노 순례길은 기도문을 몸에 새기기에는 아주 탁월한 방법이기도 해 보입니다. 그래 보입니다.

누군가의 행복을 비는 이의 '행복' '나는 당신이 행복하길 빕니다. 나는 당신이 나 만큼 행복하길 빕니다.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나 보다 더 행복하길 빕니다. 그럴 수 있기를 나의 하느님 그분의 축복을 더합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이들을 위해 이 기도를 청하고 있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내 시선에 그분의 자비를 청하며 그이들을 향해 '나는 당신이 행복하길 빕니다' 라고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까미노 길 위의 고마운 벗들 아까 낮에 보리스(크로아티아)가 묻는다. '왜 혼자 다니냐?'고, '왜 길에서 한 번도 볼 수 없냐?'고 그래서 '지금 알베르게 에서 만나지 않았냐!'며 웃음으로 답한다.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관심을 가져주고 나에 대한 호기심을 표한 것 이기에...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걷다 보니 혼자의 시간도 필요하고, 함께 하는 시간도 필요 하다는 것을... 그이들에게 나는, 혼자서 걷기 좋아하는, 그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지 않는, 조금은 이상한 동양인 친구인걸까? 어느 정도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따라 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살아 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나는 듣고 있는 사람이다. 또 그래서 어느 정도 흐름 뒤에는 살짝 자리를 비껴서 앉게 된다. 그런..

순례자들의 코골이 대응법 새벽 코골이에 잠을 깼다. 몸을 뒤척여 '내가 당신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다' 하는 신호를 주지만 그때 뿐, 곧 또다시 그이 나름의 고단함을 표한다. 그러니 그이의 탓을 할 수가 없다. 그이도 오늘 하루 그 만큼 고단했으리라. 카미노 순례에서 이쪽 알베르게에서 저쪽 알베르게까지 25-30킬로미터, 하루 6-7시간을 걷게되니, 게다가 숙박료가 싼 국립 알베르게를 찾다 보니 별의 별 순례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다른 순례자들의 코골이에 잠을 못 이룬다면 사립 알베르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조용한 반면에 숙박료가 두 배가 되기에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가난한 순례자들은 신경이 왠만큼 예민한지 않는 한 시립 알레르게로 모여들게 되는 것이다. 며칠 간 알..

어서오세요! '문자그램'에 '한국말' '어서오세요'가 없다. 영어로, 스페인어로, 일본어로 그리고 31개국 언어로(이 새벽 나는 그것들을 세어 보았다) '어서오세요' 라는 환영의 인사말이 있는데 우리말만 쏙 빼고 없다. 그래서 마지막 귀퉁이에 괜히 우리말 '어서오세요'를 더해 주고 싶은 충동이다. 벽을 장식한 문자그램에 괜히 애국심이 뻗쳐 언젠가 그 안에도 '어서오세요' 라는 우리말이 더해 지기를 응원해 본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기의 어려움 세상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를 참으로 오랜만에 경험하게 되었다. 세상에! 책도, 컴퓨터도, 인터넷도, 글쓰기도, 어떤 생산적인(?) 행위 없이 느긋하게 볕을 쬐며 한가로움을 즐긴다는 것이 나에게는 왜 이리도 어색한 것일까? 설사 '일광욕'을 할 때 일지라도 늘 전쟁을 치르듯 그 작은 나라에서는 맹렬히 계획을 세우면서 다녀오지 않았던가! 오히려 '피서 후유증' 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될 정도로 여름 휴가를 다녀 오면 오히려 더 피곤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조용한 정원 잔디 위에서 선탠의 와식 의자를 길게 펴고 따사로운 볕에 몸을 맡기며 우유자적 정오 한 낮의 여유를 만끽 하는 것..

벌거 벗은 임금님 마라(이탈리아)가 키아라(폴란드)가 만들었다는 음식을 먹고 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꾸역꾸역 먹는 중이란다. 그래서 나도 그녀가 권하는 한 숟가락 입에 넣어 보았다. 정말이지 모든 재료를 몽땅 쓸어 담은 정체 불명의 음식(?)이다. 이런 오묘한 맛을 마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먹다가 저절로 시선이 향하는 곳이 있어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 ‘나는 아름다운 당신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까미노를 하면서 한 가지 불편함으로 다가 오는 것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하느님께 눈 앞의 맑고 싱그러운 이들의 행복을 빈다. 내 시선이 그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를 청한다. 키아라 라고 하는 얼굴 여기 저기를 비롯해 온 몸을 문신으로 가득 채운 소녀, 머리를 빡 빡 밀고 다니는 한나 레게 머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