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상에게 말걸기 (213)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열엿새, 다시 Santiago. 걷지 않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향했다. 주일이라 버스가 몇 대 없다는 말에 아침부터 서둘렀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기 전에 마지막 지팡이와 헤어지는 의식을 치렀다. 카미노 사흘째부터 함께 해준 세번째 만에 선택한 그 좋은 벗에게 감사를 전한다. 멋드러진 지팡이는 아니지만 많은 길을 함께 하면서 손때 묻고 땀때 묻은 역사를 함께 동반해 준 지팡이이기에 더 마음이 애틋했나 보다. 프란치스코회 성당에서 12시 순례자 미사를 공동집전했다. 용기를 내서 제의실로 향했는데 열 명이 넘는 세계 곳곳에서 순례 온 사제들이 나 처럼 공동 주례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멋드러지고 웅장한 산티아고 대성당은 아니지만 마지막 미사를 통해 나름대로 까미노 순례를 정리해 볼 수 있는 시..

열닷새, Finisterre 리에짱과 추짱이 캐나다 국적이란다. 57/8세 부부다. 1년전 은퇴를 했고, 캐나다로 이민을 했고, 그 후 이렇게 세계로 여행을 다니고 있단다. 캐나다 부부 한 쌍을 더 만났다. 마르코스와 지젤이다. 71세와 68세. 까미노 포르투를 걸어서 산티아고까지 왔고, 지금 17일째란다. 노부부가 함께 카미노라니 참으로 좋아 보인다. 얀과 피니스테르라 끝에서 만났고 포옹 후 헤어졌다. 그의 나이 19세, 내가 첫 사랑에만 실패하지 않았어도 그와 같은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더니 자기 아버지가 48세란다. 함께 웃었다. 그의 삶에 하느님의 축복을 빌었다. 리에짱이 나에게 성격이 참 좋다라고 한다. 밭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올라,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 그랬다...

열나흘째, Muxia를 향함 이 새벽 알리샤의 험한 반응에 (심하게 코골이를 하는 독일인 여자 분에 대한, 시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순례 온) 기가 살짝 질렸다. 그녀를 위해 기도해 본다. 예쁜 폴로니아 30대후반 혹은 40대 초반의 여자 분이 고단한 다른 순례자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조금 마음이 그랬다. 멋드러진 모자와 세련된 옷차림, 지적인 이미지의 순례자라서 더 호감을 두었나 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은 보기엔 좋으나 함께 하기엔 조금 부담스런…. 반갑게 웃어 주는 순례자에 덩달아 나도 웃음이 커진다 (어느 순례자 쉼터에서 두 명의 여자사람들) 처음으로 바닷가에서의 선탠을 즐겼다.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바다다. 그러나 물은 굉장히 차가왔다. 내가 스스로 어서 빨리 저 바다에 몸을 담그..

열사흘째, Oveiroa다. 아침 6시 10분에 출발했다. 어두울 때다. 그래서인지 길을 더 내려갔다가 맞은 편에서 올라오는 순례자들 덕분에 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3명 정도… 그렇게 생각하고 걷다가 짖궃은 나의 하느님께서는 갑자기 30여명의 청년들의 행렬을 만나게 해 주신다. 그이들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걸었다. 그 청년들은 동양의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하하 역시나 걷는 이들이 많았다. 아마도 산타 마리아에서 출발한 이들인가보다. 도중에 맥주 한 잔을 했는데 갑자기 눈이 깜깜해지면서 머리가 띵해지며 사방이 어두워지는 체험을 했다. 아마도 갑자기 차가운 맥주를 마셔서인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주위가 아득해지는 체험이라..

열이틀째, Santiago를 지나 Negreira다. 계란을 삶아서 출발했다. 맛났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 설렘이 있었다. 산티아고에 머물 생각은 없다. 처음 일정을 어찌 조정할까 망설이기는 했지만 땅 끝 Finisterre까지 걸을 시간이 충분하고 낮 순례자 축복 미사가 12시라 그냥 ‘증명서’만 받고 잠시 광장에 앉아 있다가 출발했다. 증명서와 거리측정기록증명서에 3유로를 더 받는다는 말에 그냥 증명서만 받기로 했다. 아주 잠깐 순례를 미끼로 장사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또 그이들도 먹고 살아가야 하는 문제기에 그냥 미운 마음을 눌러 놓았다. 그러면서 그이들도 그것이 좀 그랬는지 직접적으로 장사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 증명서를 발급하면서 곁다리로 살짝 권하는 모습에 마음이 좀 풀렸다...

열하루째, Monte de Gozo 에 가다. 페드로우소의 알베르게에 머물려다가 그냥 몬테 데 고소 까지 왔다. 길을 나서면서 한나를 만났고 한참을 둘이서 함께 걸었다. 좋았다. 누군가와 함께 말없이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간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 어색하면서도 점점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침묵 중에 어색함도 올라왔지만 둘이 있으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익숙해질 때까지 그렇게 함께 있었다. 그녀의 삶에 하느님이 축복이 함께 하기를 그녀의 삶을 나누어 받으며 그 분의 도움을 청했다. 순례자들이 모이는 쉼터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다가 유투브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울었다. 서로 손을 맞잡은 남과 북의 두 경호원의 기분이 그대로 전해 졌다. 한국인 오금동성당 신자 안젤라 자매님을 만났다. ..

열흘째, 다음 목적지 Arzúa를 향했다. 일찍 출발했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여러 루트들이 합쳐지는 시작했는지라 시립 알베르게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듯 하다. 더 일찍 서두르는 이들도 있었다. 타미와는 아침 일찍 헤어졌으나 도중에 다시 만났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은 듯 싶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곳 출신의 젊은 여성들은 에스파냐 언어가 공용이기 때문에 주로 스페인 가정집의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한단다. 그녀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그녀의 꿈에 가 닿는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그럴 수 있기를 그녀의 삶에 기도를 더한다. 멜리데에서 아침을 먹었다. 2.5유로의 커피와 크로와쌍이었다. 멜리데 성당에서 미사가 있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