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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나가츠카 피정집에서 1시간 정도 강가를 따라 산책을 나섰다가 히로시마 원폭돔에 이르렀다. 마침 ‘고통의 신비’ 로사리오 기도를 올리다가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는 장면’을 묵상하면서 원폭돔의 철골 구조물을 올려다 보았다가 그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구조물이 예수님의 가시면류관과 닮아 보여 흠칫 놀랐다. 20만의 원폭 희생자들의 끔찍했을 고통과 아픔을 지금 덩그렇게 남은 흔적들이 전해 주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세계 곳곳의 전쟁과 테러 그리고 핵폭탄을 비롯한 무수한 무기들의 참상을 히로시마는 원폭돔의 앙상한 철골 구조로, 예수님의 고통 받았던 가시관으로 인류에게 경고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핵폭탄을 경험한 일본이 이처럼 과거의 흔적들에 ‘평화기념공원’이라 이름을 붙여 두었으면..

피정 중에 매일 성체 현시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 현존을 의식하는 순간 그분은 늘 여기, 우리 곁에서 함께 계신다. 우리가 그분을 의식하지 않을 때 비로서 저 높은 곳 십자가에 달려 계실 것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 보다 더 큰 존재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때, 우리는 겨우 조금은 겸손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누군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겸손해 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무릎은 이리 아파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왜일까? 86세 소네 신부님이 몸을 굽혀 무릎을 꿇고 성체 조배를 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져 나도 덩달아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아뿔싸! 5분도 지나지 않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올라왔다. 뱁새가 황새 따라 했다가 오랜만의 무릎 꿇음이 오히..

히로시마 나가츠카 수도원에 연피정을 위해 들렀다. 이른 도착이었기에 ‘십자가 길’로 산책을 나섰다가 예수회원들의 묘지까지 다다랐다. 한 기 한 기 새겨진 회원들의 삶들의 기록들을 읽어 내려가다 두 기의 묘비석 앞에서 한 참을 멈추어 섰었다. 전에 들었던 기억이 있는 사연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일본의 예수회 수련자 두 명이 전쟁에 징집 되었고 결국 일본의 패망 직전에 수련자들 역시 전사를 하였다는 사연이다. 그리고 눈 앞에서 그 두 분의 묘비석을 마주 하게 된 것이다. 요셉 수련자는 훗카이도 부근에서 그해 3월 20일 전사했다, 또 한 분 수련자 에우스타키오는 1945. 8. 12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기 불과 3일 전에 전사하셨다.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조금만 더 견뎌냈으면.....

미신자들도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면…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마르 2,12 공동체에 ‘부부와 같은?’ 관계의 할아버지 신부님들이 계신다. 오랜 기간 같은 공동체에서 생활해 왔고 그래서인지 서로 티격대격하면서도 둘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위에서 언급한 바로 그대로 ‘부부와 같이’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듯 하다. 둘 중 한 분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친밀하다. 예를 들어 한쪽이 며칠 일정으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나머지 한 분의 말 수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이 그래 보인다. 그런 두 분이 언제나처럼 아침 식탁 자리에서 티격태격하신다. 내용인 즉슨, 수도원 공동체에 속해 있는 ‘26성인기념성당’에서 복음 선교에 열심인 한 분 신부님이 결혼식 ..

성탄, 神이 人間이 되었다! 삼위 천주께서 사람으로 가득 찬 지구를 내려다 보시면서,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제 2위인 성자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셨다. 그리하여 때가 이르자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을 방문하신다. (영신수련 102번) 사부 이냐시오는 영적 훈련서, ‘영신수련’을 저술 하셨다. ‘영신수련’은 ‘읽기 위한 책’이 아닌 ‘영적 수련을 위한 지침서’이다. 그래서 이냐시오 성인은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 받는 존재로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셨다. 그리고 그 중 ‘영신수련 102번’ 에서는 ‘성삼위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성자 예수를 파견하는 장면’을 관상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연피정에서 나는 이 장면을 관상 기도하..

“내가 예수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 마태 17,12 미사 강론 중에 ‘내가 예수요’라고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새벽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저 신부가 아침부터 뭔 소리를 하나?’라는 표정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내가 예수입니다’라고 급 고백을 해 보았다. 그러자 옆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사비오 신부가 지금 뭔 말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신다. 그렇다. 아무리 내 쪽에서 ‘내가 예수요’라고 외쳐도 신자분들은 ‘이게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린가’ 할 것이다. 할아버지 신부님 역시 내가 평소에 워낙 엉뚱한 질문을 해대니 ‘이번엔 또 무슨 심사인가?’ 했을..

알바를 손빨래 해 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나가사키 ‘Big N’ 야구경기장에서 미사를 집전 하셨다. 3만명이 넘는 신자들이 교황님 주례의 미사에 참례하여 한 목소리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찬송을 하는 모습은 그이들 스스로에게도 기쁨이었지만 나에게도 놀라움이었다. 일본에서 가톨릭은 0.4%의 언제나 소수로 늘 조용한 그리고 소박한 모습이었기에 이런 열정적인 찬송과 환호 그리고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강렬한 공동체성은 일본 교회의 현실에 둘러싸여 ‘조용히’ 살아가는 내게도 가슴 뜨거움이었다. 여기 저기 눈물을 흘리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언제 이런 뜨거운 감동을 맛 보았는지 그이들의 기쁨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게 열렬히 미사를 마치고 순백의 제의를 정리하는데, ‘아뿔사’ 오전..

절망 중에 있을 때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성당에서 와락 절망감이 밀려든다. 최근 긴장 중에 있는 형제에 생각이 가 닿자 나도 모르게 이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이다. 사는 데에 별 관계가 없다면 안 보고, 안 부딪치면 될 일이지만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 하고 살아야 하는 공동체 형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그 형제가 공동체 장상이고, 사도직 일터의 책임자라면 이번 생(?)은 완전 망한 것이다. 이 아침 가슴이 먹 먹 해지는 것은 앞으로 이 생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 앞에서는 절대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나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그냥 해!’라는 말들 앞에서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장렬히 전사할지언정 절대 물러설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투력을 상승시키며 ..